감상글(시)

자정의 심의 / 보들레르

톰소여와허크 2021. 4. 1. 00:10

자정의 심의 / 보들레르(김인환 역)

 

 

자정을 알리는 괘종 소리

빈정대듯 우리에게

지난 하루 우리가 무얼 하였는지

회상하라 하네.

오늘은 운명적인 날,

13일의 금요일이라,

우린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단자의 삶을 살았구나.

 

우린 예수를 모독했어.

신들 중에서 가장 확실한 신을!

거부(巨富) 크로이소스 왕의

식탁에 붙은 기생충처럼

우린 야수에게 아부하고자

다이모니온의 신하가 된 듯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모욕하고

우리가 혐오하는 것에는 아부했지.

 

비열한 냉혈한이 슬프게 하는 건,

부당하게 멸시받는 약자들.

황소보다 더 미련한

엄청난 바보짓을 존경하고,

멍청하게 물질에 입 맞추며

커다란 믿음을 주고,

부패에서 시작하는

창백한 빛을 축복했지.

 

마침내 우린 현기증을

광란 속에 잠기게 하려고

칠현금의 오만한 사제,

음울한 도취를 펼치는 것이

우리의 영광일지니,

갈증 없이도 마시고, 허기 없이도 먹었지!……

빨리 램프를 끄자.

우릴 어둠 속에 숨겨야 하니!

 

 

감상 : 시집 악의 꽃(1857)은 발간되자마자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시 여섯 편을 삭제하라는 주문과 함께 벌금형을 선고받은 시집이다. 보들레르의 시는 자신의 시대로부터 외면받은 셈이지만 다수 예술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특히 베를렌, 말라르메, 랭보의 열렬한 추종을 받게 된다.

악의 꽃(앙리 마티스가 엮은 버전)에 수록된 보들레르의 자정의 심의(L'examen de minuit)엔 물질을 추구하는 세태와 거기 부응하거나 고민하는 자신의 내면이 담겨 있다.

“13일의 금요일은 불길한 의미로 많이 차용된다. 예수와 12인의 제자 곧 13인이 아름답게 동행하지 못하고 유다의 배신과 예수의 죽음으로 귀결되고 마는 장면과 관련 있다는 거다. 예수를 고발한 대가로 유다는 금전을 챙긴다. 크로이소스 왕은 리디아와 마지막 왕이다. 크로이소스를 만난 아테네 학자인 솔론은 당장의 부만 가지고 행복을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솔론의 말처럼 크로이소스는 부와 권력을 누리다가 전쟁에 지고 겨우 화형을 면했다고 알려져 있다. 다이모니온은 정령이나 초자연적인 힘을 의미하는 다이몬에서 나온 말로 마음속으로부터의 경고란 의미도 있다.

말하자면, 보들레르가 듣는 경고의 소리는 내면의 악마를 물리치라는 거다. 그 악마는 돈의 화신이다. 돈의 화신은 자신의 숭배자들로 하여금 악착같이 돈에 들러붙어 사는 기생충이 되게 한다. 영화 <기생충>을 만든 봉준호 감독이 이 시를 읽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자정의 심의<기생충>이 함의하는 바가 비슷해 보인다. 지하실에 살면서 부잣집 식탁을 욕망하는 사람들만 기생충이라고 보는 건 서사를 잘못 읽은 것이다. 부자로 있으면서 자기 부를 당연하게 여기며 냄새로 신분을 가르는 점잖은 부자 양반이야말로 물질을 추구하는 돈의 화신이면서 동시에 약자에게 빨대를 대고 있는 기생충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 보들레르는 본말전도, 가치 역전의 상황을 선명하게 깨친다. 보들레르 자신부터 의붓아버지의 많은 유산을 사치와 낭비로 소모하고, 그걸 제한하려는 어머니와 불화하면서 사이가 멀어졌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모욕하고 / 우리가 혐오하는 것에는 아부했지라는 고백의 울림이 크다.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이성을 잃을 정도로 금전에 집착했던 내면의 토로가 아닌가.

축제와 광란의 시간을 지나는 것이 한때의 묘미일 수도 있겠지만 뒷정리와 수습의 시간 없이 축제는 이어지지 않는다. 이제 반성과 성찰의 시간이다. 전등을 끄면, 어둠 속에서도 숨겨지지 않는 양심의 고동이 유난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