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먼지 속의 프로이트 / 고희림

톰소여와허크 2021. 4. 7. 23:36

먼지 속의 프로이트 / 고희림

 

 

그는 늘 말한다

정신과 의사 같은 말, 마음을 비우라는 말

당신 곁엔 내가 없고 내 곁엔 당신이 없다는 말

혁명이니 희망이란 우리 곁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는 말

 

말이란 그러나 알아듣지 못하면 나이가 불쌍해진다

상처가 된 말들은 예의가 없다

백로(白露)가 마신 화주(火酒) 같다

 

그는 그런 빛 같은 말을

먼지처럼 사는 나에게 마구 쏜다

 

아아 먼지 속의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분석받고 있는 사람을

여자로 가정하기 좋아했다지

나는 너에게, 빛에게

모든 의무에 함량된 내 피에게, 프로이트에게

분석받고 있다

인연을 끊지 못하여 내부, 내부를

먼지로 만들어가는 여자

 

우리가 사랑에 관해서 말할 때

정말로 그 사랑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역사에서

 

-『평화의 속도, 시와반시, 2003.

 

 

감상 : 프로이트는 꿈을 분석하며 꿈은 억압된 소망의 위장된 충족이라고 했다. 그 소망이란 게 스스로 인정하기 힘든 경우 꿈의 왜곡이 생긴다. 프로이트는 그걸 감안해서 꿈을 분석하고 꿈의 배경이나 심리적 기제를 파악하는 데 철저했지만, 일반인은 먼지로 덮인 불투명한 내면만 응시할 뿐 명료한 해석을 갖는 게 어렵겠다.

꿈의 해석에 프로이드가 간여했다면, 위 시에선 시인의 마음에 관해서 가 부지런히 분석하고 처방하는 모습이다. 시인은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혁명과 희망을 예전처럼 품지 못하는 시대에 낙담하기도 한다. “백로(白鷺)가 마신 화주(火酒)”란 표현이 재미나지만 사실, 여린 존재가 소줏불로 속을 태우는 모습이고. 이런 속 태움은 상처가 된 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상처의 말을 빛 같은 말로 상쇄시키면 좋겠지만 삶이 그처럼 간명할 리가 있겠는가. 상처의 깊이만큼 내부의 먼지 더께는 더 쌓이고 삶도 그만큼 불투명해진다.

시의 끝 연에 인용한 줄리아 크리스테바의 말은 시인의 내면에서 분출해 나온 질문이다. 하고많은 질문 중에 위 질문을 선택한 내면 풍경을 분석하고 싶다면 프로이트부터 읽는 게 순서일 것이다. 시간을 아끼려면 공단분식식당에서찬 막걸리를 받아두고 시인의 육성을 직접 듣는 방법이 있어 보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