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삼 / 정진규
김종삼(金宗三) / 정진규
일본시인이었던가 김춘수 선생이었던가 ‘우스움의 쓸쓸함’이란 말을 써서 그만 내 눈이 눈물을 펑펑 쏟게 한 적이 있었다 왜 그렇게 슬펐을까 낡고 때 묻은 것이 오히려 놀라울 때가 있다 그 일본 시인은 한 그루 계수나무가 그렇게 찾던 그 고결한 나무가 초등학교 변소 곁에 서 있었다고 했다 그게 우스움의 쓸쓸함이며 놀라움이라고 했다 오늘 나는 김종삼의 「시인학교」를 다시 읽으며 우스움의 쓸쓸함을 또 펑펑 울었다
『껍질』, 세계사, 2007.
감상- 정진규 시인은 1960년대 후반부터 세 살 위인 김영태, 세 살 아래인 이승훈 등 주로 현대시동인과 어울리며 광화문 뒷골목 유성 다방이나 아리스 다방을 찾았다. 이곳을 자주 출입하던 김종삼, 전봉건, 김광림을 선배로 예우하며 따랐고 특히, 전봉건 뒤를 이어 《현대시학》 운영을 맡아서 이십오 년여를 더 잇고 바통을 넘겼다.
한번은 아리스 다방 근처에서 정진규는 김종삼이 홍옥 한 알을 사서 하얀 손수건으로 감싸는 걸 지켜본다. 이 장면은 뒷날 「홍옥 한 알」로 남는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시 한 편은 시인학교를 언급한 「김종삼」이다.
시 「김종삼」의 인용 내용은 김춘수가 번역한 니시와키 준사부로의 연작시 「나그네는 돌아오지 않는다」의 한 대목이다. 책에서 읽은 계수나무를 직접 보고 싶어 도시 전체를 둘러보다가 학교 변소 곁에 꼬부라진 한 그루를 그예 만났다는 내용인데 나무를 찾는 과정이나 그렇게 해서 찾은 궁색한 나무 모습에서 “우스움의 쓸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시를 쓰는 마음과 읽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할 때가 있다. 읽고 있는 시 내용이나 표현이 이쪽의 경험과 감정을 깊고 예민하게 후비면서 정진규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마음으로 가꾸고 그리워하고 찾아 헤매는 것이 뜻밖에 “낡고 때 묻은” 초라한 모습으로 확인되는 건 어떤 마음일까. 눈물을 펑펑 쏟아내는 건 또 어떤 마음일까.
시인에게 영감을 준 “우스움의 쓸쓸함”은 우스움도 아니고, 쓸쓸함만도 아니고, 둘의 단순한 연결도 아니고, 둘의 물리적 합은 더더욱 아니다. 정진규는 「시인학교」를 읽으며, 예의 “우스움의 쓸쓸함”을 다시 상기하며 또 눈물바다다. 시인학교 강사와 학생을 불러 모으고, 교사(校舍)를 엉뚱하게 레바논 골짜기에 짓겠다는 도깨비 김종삼을 떠올리고, 우습기도 하고, 반갑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그립기도 한 마음이 사무쳐 우는 것일 테다.
삶은 어떤 식으로든 기억된다. 니시와키 준사부로은 계수나무 한 그루로 기억되고, 정진규에게 김종삼은 홍옥 한 알과 시인학교로 기억되고, 정진규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기억되고, 내게 김종삼은 레바논 골짜기와 “앉은뱅이 한 그루의 나무“(「한 골짜기에서」)로 기억되고…….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