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천년의 화가 - 김홍도
이충렬, 『천년의 화가 – 김홍도』, 메디치, 2019.
- 『간송 전형필』을 쓴 전기 작가 이충렬이 그림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김홍도를 얘기한다. 중인 출신인 김홍도가 안산 단원(檀園-박달나무숲)에 머물렀던 양반 출신 강세황으로부터 그림을 배울 수 있었던 사연, 그 인연으로 인해 자신의 호를 단원으로 쓰고 싶었던 마음, 평생의 벗인 이인문과 제자로 받아들인 박유성과의 인연, 세 번이나 어진화사(임금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되었지만 말년까지 생계를 걱정해야 했던 모습 등이 김홍도의 그림과 함께 흥미롭게 이어진다.
작가는 <단원도> 제화시에 나오는 ‘금성동반(錦城東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바탕으로 김홍도의 집을 인왕산 백운동천 계곡으로 특정한다. 단원이란 당호를 고민하던 시절의 풍경이다. 그림 속 오동나무 뒤로 보이는 거문고 타는 이가 김홍도다.
세 번째 어진화사로 활약한 김홍도는 중인 출신이 받을 수 있는 최고 관직인 연풍현감에 제수된다. 매사냥 정경을 그린 <호귀응렵도豪貴鷹獵圖>를 남긴 득의의 시절이다. 그렇지만 매사냥에 자주 나서고 민정을 돌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파직당하는 단초가 되니 사람 일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관련 그림엔 낙관만 보인다. 책에서 그림 제목을 ‘호귀응렵’으로 해두고 ‘호탕한 귀인의 꿩사냥’으로 덧붙인 대목은 출판 과정의 실수로 보인다. 꿩 사냥은 맞지만 매를 이용한 꿩 사냥은 ‘매사냥’이란 용어가 통용되고 있다. 김홍도는 의금부의 결정을 기다리는 중에 사면을 받는다. 목민관의 무게보다 자유로운 환쟁이가 김홍도에게 어울렸겠지만 그 자유엔 대가가 있는 법이고, 그 경계에 고뇌와 예술이 쌍으로 피어난다.
김홍도의 <기려행려도>도 눈에 오래 남는다. 작가는 이 그림에 대해서 따로 설명하지 않았지만 늙고 병든 김홍도가 제자 박유성의 초대로 전주로 내려가면서 전라감사의 도움으로 몸을 의탁하는 내용을 싣고 있다. 김홍도는 자식에게 보낼 월사금을 걱정하는 편지를 쓰고 얼마 후에 숨을 거둔다. <기려행려도> 제화시는 송나라 시인 진여의의 7언 율시에서 빌렸다.
客子光陰詩巻裏 나그네 세월은 시권 속에 있고
杏花消息雨聲中 살구꽃 소식은 빗소리 속에 있네.
그림과 시가 절묘하게 어울렸다. 삶과 죽음이 한 세월이고, 꽃 피는 시절과 저무는 시절이 한 그림이다. 그 허무를 견디려 시인은 시집을 남기고, 화가는 화첩을 남기고, 전기 작가는 일생을 추적하는 것일 수도...(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