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마시기 / 임강빈
혼자 마시기 / 임강빈
목로에 혼자 앉아
마시기까지는
꽤나 긴 연습이 필요하다.
독작이 제일이라던
어느 작가의 생각이 떠오른다.
외로워서 마시고
반가워서 마시고
섭섭해서
사랑해서
그 이유야 가지가지겠지만
혼자 마시는 술이
제일 맛이 있단다.
빗소리 간간이 뿌리면 더욱 간절하다 한다.
생각하며 마실 수 있고
인생론과 대할 수 있고
아무튼 혼자서 마시는 맛
그것에 젖기까지는
상당한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
-『조금은 쓸쓸하고 싶다』, 창비, 1989.
감상 – 함남 정평 출신 한성기 시인, 논산 출신 박용래 시인, 공주 출신 임강빈 시인은 비슷한 시기에 대전에 모여서 활동한다. 임강빈은 박용래의 오류동 집을 종종 찾아서 인근 술집에서 술을 기울이곤 했다. 독작을 위해선 “상당한 연습이 필요한 모양이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면 선배 술꾼에 비해서 분발이 필요했음을 짐작케 한다.
박용래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 없고, 술을 마시면 울지 않는 날이 없었다고 전한다. 박용래의 강경상고 후배는 내로라하는 뭇 선배를 후배처럼 대했던 김관식이다. 김관식은 술병으로 몸이 먼저 망가져서 「병상기」를 쓰며 죽어갔다. 「투병기」를 몇 차례 썼던 김종삼도 그 뒤를 잇는다. 조지훈의 음주 18단계의 마지막인 ‘관주’(觀酒 : 술을 보고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는 없는 사람)와 ‘폐주’(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의 단계를 정확히 밟아간 사람들이다. 이들이 보여준 술과 예술의 경지를 연습만으로 흉내 낼 순 없을 것이다.
독작은 음주 18단계에 없는가 해서 봤더니 4단계 ‘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쉬워서 혼자 숨어 마시는 사람)에 가깝다. 돈도 돈이지만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남에게 공연히 피해를 주거나 실망을 주는 일을 삼갈 수 있으니 독작의 이로움이 적잖다.
또 한 편 생각하면 주위 사람들이 독작이든 대작이든 뚜렷한 기호를 갖고 사는 건 아니다. 혼자도 살고 섞여서도 살아야 하니 하나만 고집하기 어렵다. 임강빈 시인은 “혼자서 마시는 맛”의 경지를 연습하는 것으로 남이 갈라놓은 무의미한 단계를 건너뛰어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싶었을 것이다. 임강빈뿐만 아니라 시를 쓰는 사람의 꿈이 그러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진짜 술꾼은 빗소리가 있어도, 없어도 오직 술만 생각한다고 마침표를 찍으려다가 물음표로 바꾼다. “상당한 연습”도 준비가 안 된, 술꾼도 못 되는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