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옆의 방 / 이운진
바다 옆의 방 / 이운진
햇살은 사각형으로 눈부시다
그 곁에서 젊음과 닮았던 바다는 조그맣게 푸르다
어쩌면 이것은 망각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빛과 구름과 물결은 한순간도 바꾸지 않고
그저께였고 어제였고 조금 전이었던
시간은 오지 않고 가지 않는다
나쁜 것은 모두 나였다고 자책할 때
눈 뜨지 못하도록 햇살은 반짝이고
햇빛을 빨아들이는 벽은 튼튼하다
아무도, 그 누구를 위해서도
울지 않을 때까지
바다만 시리게 바라보는 곳
마른 꽃도
줄 끊어진 기타도
꿈속에서나 나에게 돌아오던 한 사람도 없는 곳
어쩌면 이곳은
천천히 그리고 아름답게
너를 잃기 위해 만든 방인지도 모른다
견뎌야 할 기억이 더 남아있어
내가 간다면
그 빈방으로 가는 것이다
* <바다 옆의 방> :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 제목
- 『톨스토이역에 내리는 단 한 사람이 되어』 (천년의시작, 2020)
감상 –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근대의 실내외 공간과 건물을 화폭에 가져와서 개인의 고독감이 짙게 배인 그림을 즐겨 그렸다. 주거 공간, 사무실, 주유소, 가게, 호텔 등의 벽이나 침대, 테이블을 배경으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거나, 금방 사랑을 끝내거나 그러지 못하거나 중에 혼자 남겨진 개인이 그림 속에 등장한다. 두 사람이 나란히 구도 안에 들어있을 때도 둘은 딴전을 피우거나 딴 곳을 본다. 마치 서로 다른 시간,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시인의 눈에 든 호퍼의 작품은 (1951)다. 그림 속 방은 방문을 통해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조망 좋은 여관집 분위기다. 호퍼는 거리감을 확 줄여 방이 마치 바다에 떠 있는 느낌을 갖도록 해두었다. 바다를 보거나 등지거나 쓸쓸한 표정의 한 사람을 그림에 넣을 법도 했지만 호포는 그 자리에 햇살을 둔다.
시인은 이 빈방을 왜 빌려온 것일까. 젊음과 닮았다는 바다는 여전히 푸르지만 “조그맣게”라는 수식어가 따라와 있다. 한때 출렁이고, 희망으로 들끓으며, 먼 데까지 끝없이 펼쳐질 것 같은 세계가 한 격랑을 지나고 차분해진 느낌을 받는다. 이런 느낌은 시인이 빈방을 찾는 이유와 연결된다. 시인에게 빈방은 “너를 잃기 위해 만든 방”에 가깝다는 것이다.
너는 먼 바다의 꿈에 함께 동행하거나 그러기를 바랐던 인연일 수도 있고, 그런 마음으로 가득한 자아의 분신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 나의 뜻대로 안되는 게 인생이다. 실수와 오해와 욕심과 걱정과 질병과 죽음과 이별로 ‘나’와 ‘너’는 분리되고 그런 너로 인해 자책하고 상처받는 날도 있을 것이다.
상처는 자신에게 약을 주도록 처방을 기다린다. 이기적으로 자신을 돌보는 것도 필요하다. 시인에게 빈방은 그 누구를 위해서도 울지 않고, 꿈속에서나 돌아오던 사람마저 놓아주는 곳이다. 빈방은 상처로부터 떠올려진 공간이지만 햇살을 깊이 당겨 치유하기 좋은 공간의 쓸모를 갖기도 한다. 상처와 고독 그리고 치유……, 호퍼의 그림과 대화하는 많은 사람들의 감정이 꼭 그랬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