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화가와 시인
보들레르(윤영애 역), 『화가와 시인』, 열화당, 1979.
회화시의 범주에 들지 않더라도 시를 읽으면 그림이 떠오를 때가 있고, 구상과 추상에 이르는 다양한 그림에서 상징, 비유, 음악 등 시적인 요소를 발견하기도 한다. 그림을 시의 제재로 삼는 것도 흔하고, 거꾸로 시를 읽고 받은 감동이나 영감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많다.
시와 그림의 친근성만큼 시인과 화가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중섭 화가의 그림 제작과 전시에 도움을 준 이는 구상 시인이었고, 이중섭에 관한 평전이나 편지글을 엮어서 사후에 이중섭 신화에 일조한 사람 중에 고은 시인과 박재삼 시인이 있다. 고은과 박재삼이 이중섭에 관한 글을 준비할 만큼 이중섭 개인이나 그림에 영향 받은 사실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화가와 시인』에서 만나는 들라크루아(1798~1863)와 보들레르(1821-1867)의 관계도 그렇다. 뒷날 릴케가 『로댕론』(1903)에서 조각가 로댕이 작업에 얼마나 집중하는지, 평소에 독서를 얼마나 하는지 적었듯이,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에 대해서 그가 대 독서가이며 “많은 시인의 작품을 읽었던 탓으로 그의 내부에는 재빨리 구성되는 웅장한 이미지, 다시 말해서 완벽하게 구성된 그림들이 남아 있다”고 평해둔 것이 눈에 띈다.
실제 머릿속 이미지를 글보다 그림으로 표현하는 데 더 익숙했기에 들라크루아는 화가가 되었을 것이고 보들레르는 시와 산문에 능한 시인이 되었을 것이다. 들라크루아는 한 페이지의 글을 쓰는 데 두통을 동반할 뿐이라고 했지만 보들레르라고 해서 또 보들레르가 심취했던 에드거 앨런 포우나 다른 유명 작가라고 해서 그런 두통 없이 글이 써지는 것은 아닐 테다.
보들레르는 들라크루아의 색채 감각을 칭찬하며, “대중이란 천재와 비교해 볼 때 시간이 늦는 시계”라고 했다. 또한 “영웅이란 흔들림 없이 집중할 줄 아는 자”란 에머슨의 말을 거듭 인용하며 들라크루아를 그런 영웅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힘을 집중할 줄 아는 또 한 명의 당사자는 보들레르 자신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도 문제는 “집중”이구나, 하는 탄식을 자아낼지 모르겠다.
보들레르는 몇 번의 살롱전에 전시된 들라크루아의 작품을 꾸준하게 언급한다. ‘1855년 만국박람회’ 전에서 행했던 작품 평도 인상적이다. <햄릿>을 두고, “루비에르(연극 배우)가 우리에게 보여준 신랄하고 불행한 불안을 극도로까지 밀고 간 난폭한 햄릿이 아니다. 그런 대비극배우의 공상적 괴기 취미에 불과하다. 들라크루아는 아주 섬세하고 창백한, 희고 여성적인 손을 가진 햄릿을 보였다. 미묘하지만 약간 우유부단한 거의 기력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눈을 가진 연약한 성격의 햄릿, 이 같은 들라크루아의 햄릿이 아마도 실제의 모델 햄릿에 더 충실할 것이다”고 했다. <사자 사냥>에 대해선, 색깔의 폭발이란 말을 써 가며, “지금까지 이보다 더 아름답고 농도 짙은 색깔이 눈의 통로를 통해 영혼에까지 파고든 적이 없다”며 극찬에 가까운 평을 한다.
보들레르에게 들라크루아는 최고의 화가지만 들라크루아 자신은 색채와 화폭의 견고하지 못함에 대해 씁쓸해 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며, 그런 결핍감과 완성의 욕구가 예술이 창작되고 사랑받는 궁극의 이유일 거란 생각을 한다. 화가와 시인의 우정을 짐작하며, 어쩜 들라크루아보다 더 유명한 것도 같은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한번 더 쳐다본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