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나무, 인문학으로 읽다
이정웅, 『나무, 인문학으로 읽다』, 학이사, 2015.
저자인 이정웅 선생은 대구 수목원 조성에 상당한 역할을 한, 나무를 잘 아는 나무 고수 중의 한 분이다. 『나무, 인문학으로 읽다』는 대구, 경북과 전국의 나무를 찾아서, 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많은 나무 이야기 중 상주 주씨와 관련된 나무를 보자. 저자는 상주 주씨 집성촌이 합촌면 율곡리 문림리에도 생긴 배경을 소개하며, 예안 현감을 지낸 주이가 지었다는 호연정과 호연정 옆의 450년 된 은행나무를 말한다. 호연정에 대해선 또 다른 나무 고수 고규홍 선생이 『옛집의 향기, 나무』에서 언급한 기억이 난다. 같은 장소에 오더라도 조금씩 다른 시선을 만나는 건 당연하다. 이정웅은 집 주인 주이와 주이가 심은 은행나무에 대해서, 고규홍은 호연정 건물과 앞마당의 죽은 은행나무 이야기에 대해서 더 많은 지면을 내어준다.
주이의 당숙은 주세붕이다. 합천에서 태어나 함안 칠원에서 성장했다고도 하고, 아버지 대 칠원으로 옮겨 와서 처음부터 칠원에서 태어났다고도 한다. 주세붕은 풍기 군수로 있으면서 백운동 서원을 건립했다. 백운동 서원은 이후 퇴계의 건의로 소수서원이란 현판을 받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었다. 주세붕은 풍기에서 향교를 옮겨 지으면서 은행나무 세 그루를 심는다. 이곳은 지금의 경북항공고등학교 교정 자리며, 은행나무 두 그루가 여전히 위세를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주세붕이 심었다는 안내판이 없어서 서운하다는 말도 저자는 부기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떠한지 모르겠다.
대구 지역의 나무는, 달성 파회마을 탱자나무, 도동 측백나무, 달성공원 가이즈까 향나무, 도동서원 은행나무, 천주교 대구교구청 히말라야시다에 대해서 관련 인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이밖에 강진 영랑생가의 은행나무는 김영랑과 아버지가 함께 심고 가꾸었다고 한다. 저자는 《조광》 9월호에서 영랑의 글을 발췌해서 이 사실을 분명히 해둔다. 나무를 심은 지 17,8년 만에 은행알이 처음 달렸을 때의 감격을 영랑은 이렇게 적어두었다.
“몸피야 뼘으로 셋하고 반, 그리 크지 않은 나무요, 열매라야 세 알인데 이렇게 기쁠 때가 없었소이다. 의논성이 그리 자자하지 못한 아버지와 아들이라 서로 맞대고 기쁜 체는 않지만, 아버지도 기뻐합니다. 아들도 기뻐합니다.”
영랑의 이 글을 만나고 저자가 기뻐했을 모습이 선하게 그려진다. 지리와 나무와 인간과 역사가 아름답게 만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나무가 간직한 이런 이야기가 좋아서 나무 주변을 자꾸 맴돌게 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