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 박세영
자화상 / 박세영
지나간 내 삶이란
종이쪽 한 장이면 다 쓰겠거늘
몇 점의 원고를 쓰려는 내 마음
오늘은 내일, 내일은 모래, 빚진 자와 같이
나는 때의 파산자다,
나는 다만 때를 좀먹는 자다.
언제나 찡그린 내 얼굴은 펼 날이 없는가?
낡은 백랍같이 야윈 내 얼굴,
나는 내 소유를 모조리 나누어 주었다.
오랫동안 쓰라린 현실은 내 눈을 달팽이 눈같이 만들었고
자유스런 사나이 소리와 모든 환희는 나에게서 빼앗아 갔다.
오 나는 돈키호테요 불구자다.
허나 세상에 지은 죄는 없는 것 같으되
손톱만 한 재주와 날카로운 인식에
나는 가면서도 갈 곳을 잊은 건망증을 그릇 천재로 알았고,
북두칠성이 얼굴에 박히어 영웅이 될 줄 믿었던 것이
지금은 죄가 되었네.
그러나 칠성 중에 미자르(개양성)가 코 옆에 숨었음은, 도피자와 같네.
해 밝은 거리건만, 왜 이리 침울하며
끝없는 하늘이 왜 이리 답답만 하냐.
먼지 날리는 끓는 거리로
나는 로봇같이
거리의 상인이 웃고, 왜곡된 철학자와 문인이 웃는대도
나는 실 같은 희망을 안고
세기말의 포스터를 걸고 나간다.
-『산제비』 (1938) / 이동순ㆍ박영식 엮음, 『박세영 시전집』 (2012)
감상 : 「자화상」은 박세영이 1935년에 발표한 시다. 1933년에 송영과 함께 주도하던 진보적 아동 계몽지《별나라》가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되고, 1935년 임화가 주도하고 그가 몸담았던 카프가 해산되었으니 그 즈음 시인의 자화상일 것이다.
박세영의 배재고보 동창으로 알려진 나도향은 1925년 『벙어리 삼룡이』와 『뽕』을 남기고 이듬해 요절했고, 배재고보 편입생으로 나도향과 친하게 지냈던 김소월은 시집 《진달래꽃》(1925)을 남기고 1934년 쓰러졌다. 요절한 천재들은 남한에서 문학사의 별로 기억될 테지만 박세영은 어떨까? 월북 작가로 북한 애국가까지 지었지만 먼 훗날 통일 조국에서도 빛나는 별로 평가받을까?
스스로를 “때의 파산자”, “때를 좀먹는 자”로 심지어“불구자”로까지 언급하는 삼십 대 중반의 시인은 암울한 시대의 벽에 부딪쳐 비관적 인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실상 시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리 비극적이지 않다. 시인이 타고났다는 미자르(개양성 혹은 무곡성이라고도 함)는 국자 모양의 손잡이에서 두 번째 있는 별자리다. 운명을 관장하는 별로 다른 별보다 힘이 세다는 설도 있다. 시인의 얼굴에 앉은 별 점은 코 옆 점으로 살짝 숨었지만 없는 게 아니니 언제든 빛을 낼 것이다. 그래서 남들이 웃든지 말든지 시인은 희망을 품고 있다.
시인의 희망은 시집『산제비』의 표제작이기도 한 ‘산제비’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땅이 거북등 같이 갈라졌다. / 날아라 너희들은 날아라, / 그리하여 가난한 농민을 위하여 / 구름을 모아는 못 올까. / 날아라 빙빙 가로 세로 솟구치고 내닫고, / 구름을 꼬리에 달고 오라.” 는 바람이 그것이다. 이런 희망을 갖고 있는 한 답답해도 아주 답답한 것은 아니고, 침울해도 아주 침울한 것은 아니다.
해방과 함께 감옥에서 풀려난 시인은 자신의 별자리처럼 빛을 냈지만 1946년에 만난 김일성 장군을 별 중의 별인 태양으로 기리기 시작한다. 가장 빛나는 자리에 두려고 했던 건 장군이 아니라 인민(노동자, 농민)이었던 것을 시인은 잊었을까. 돈키호테는 망상에 빠졌어도 정의를 위해 나서길 멈추지 않았는데 시인의 선택엔 그런 낭만이 없어 보인다. 절대 권력일수록 더 비판하고 경계해야겠지만 생존에 대한 본능적 감각이 그걸 막았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배재고보를 졸업한 나도향, 김소월, 송영, 박세영……. 그리고 또 다른 친구들의 길이 궁금해진다. (이동훈)
인용 시는 이동순ㆍ박영식의 『박세영 시전집』을 참고하여 현대 표기에 맞게끔 수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