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먹고 사는 일 / 김창제

톰소여와허크 2021. 10. 11. 20:49

먹고 사는 일 / 김창제

 

 

머리 위에서 청설모가

뭔가를 떨어뜨린다,

 

솔방울 갉아먹고 껍데기를 떨어뜨린다

 

나는 쇠를 잘라 먹고 사는 사람,

 

먹어도 먹어도 쨍그랑거리는

사람으로

 

돌아서자

솔방울 하나 툭, 떨어진다

 

지는 꽃에게 말 걸지 마라, 2021.

 

 

감상- 1946년 이윤수 시인은 시 동인지죽순창간호를 낸다. 중간에 삼십 년의 공백기가 있었지만 죽순은 지금도 간행되고 있고, 김창제 시인은 그 잡지 발행을 주관하는 죽순문학회 회장을 맡고 있다.

시인의 고향은 거창이다. 거창은 임화의 아내인 소설가 지하련의 고향이고, 신달자 시인과 이기철 시인의 고향이기도 하다. 김창제 시인의 이번 시집을 출간한 학이사 신중현 대표와 시집 해설을 쓴 신용목 시인도 거창 출신이어서 우연인 거 같기도 하고 필연인 거 같기도 한 인간사가 흥미롭다.

인용 시는 솔방울을 요리하는 청설모로부터 시인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청설모는 솔방울 껍데기를 낱낱이 제거하면서 껍데기 안에 든 씨를 알뜰히도 빼먹는다. 그 행동이 기민하고 입을 놀리는 동작이 워낙 재빨라 특별한 곡예를 보는 듯도 하지만, 위험에 노출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한 동작일 가능성이 크다. 청솔모가 먹고 사는 일로 분주하듯이 시인 또한 쇠를 잘라 먹고 사는 사람으로 부지런히 살아왔을 것이다.

노동을 통해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은 호구책이면서 동시에 자신과 주변을 챙기는 일이다. 스스로 감당해야 할 일이기도 하지만 이웃과 사회로부터 지워진 도리를 다하기 위한 안간힘이기도 했을 것이다. 나날의 삶이 고단한 날들의 연속이고, “쨍그랑거리는소리가 노동의 삶을 증거한다. 하지만 쨍그랑 소리의 여운은 오히려 맑은 쪽이다. 쨍그랑 소리가 양식을 구하는 소리에 그치지 않고, 자신을 완성해주고 이만큼의 삶을 결실해준 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은 쇠를 잘라서 싣는쇠장수면서 동시에 라는 노동도 품고 산다. 그러고 보면, 쨍그랑 소리는 진정성 있는 한 편의 시가 갖은 울림의 표현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