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앵무새 죽이기

톰소여와허크 2021. 11. 18. 21:28

하퍼 리(박경민 역), 앵무새 죽이기, 한겨레, 1992.

 

 

- 소설에서 앵무새가 의미하는 바는 뭘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미국 남부 앨라배마 주에서 자랐다는 하퍼 리(1926-2016)1930년대 경험이 반영된 이 책은 그녀의 나이 스물아홉 되던 1960년에 발표됐다.

앨라배마 주의 몽고메리는 1955년 흑인 여성이 백인에게 버스 앞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흑인 인권 운동이 촉발되었던 곳이고, 그 선두에 킹 목사가 있었다. 차별 철폐와 흑인 투표권을 요구하며 거리 평화 행진을 주도하던 킹 목사는 1968년 암살되었다.

앵무새 죽이기도 흑인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와 함께 소년소녀(젬과 스카웃)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다. 흑인 차별이 당연시되던 시대 분위기 속에 지역 변호사는 법 앞의 평등이란 명제를 흑인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그 대가는 백인으로부터의 따돌림뿐만 아니라 자신과 아이들의 생명이 위협받는 데까지 이른다. 결국, 백인 배심원의 판단으로 흑인은 강간 누명을 벗지 못하고 죽는다. 흑인의 죽음을 두고 사냥꾼이나 아이들에 의해 무분별하게 죽어간 노래하는 새에 비유했다는 재판 기사를 인용해둠으로써 작가는 앵무새의 정체를 암시한다.

평등을 말하기 어려운 시대와 지역에서 평등을 이야기하는 미덕과 함께 이 소설의 성공 이유는 유년의 감정과 모험을 흥미롭게 깔아놓았기 때문일 것이다. 변호사 집의 이웃인 부 래들리는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수수께끼의 인물인데 그 덕에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모험엔 두려움이 따른다. 아이들이 두려움과 싸워가며 그 집 앞을 서성인 덕에 떡갈나무 옹이구멍에 부 래들리의 선물이 주어진다. 그 옹이구멍이 시멘트로 덮였을 때 젬은 눈물을 보인다. 젬의 눈물에 특별한 이유를 달지 않았지만 소설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으로 꼽고 싶다.

부 래들리는 외부의 차별과 편견에 스스로 문을 닫고 들어간 사람이지만 아이들이 그 떡갈나무 아래에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문을 열고 나온다. 작가는 소설 속 앵무새의 범위를 조금 넓게 인식해도 좋다는 암시를 둔다. 선의를 가지고 백인을 도우려다가 강간범으로 몰려 죽는 흑인도, 그 흑인을 도와 어떻게든 진실을 밝히려는 사람도, 그런 게 아무 소용없어 문을 걸고 세상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도, 그 사람의 정체를 멋대로 상상하면서도 세상을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려는 아이들도 다 앵무새다.

평등 세상에서, 앵무새가 다치지 않고 이 나무 저 나무를 옮겨가며 노래하는 건 닿을 수 없는 꿈인가. 킹 목사가 보고 싶어했던 나라, 아이들이 피부색으로 판단되지 않고 그들의 인품에 의해 판단되는 나라에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아이들이 새로운 모험에 설레는 세상을 하퍼 리는 보고 갔을까.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