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 그 모든 낯선 시간들
로렌 아이슬리(김정환 역), 『그 모든 낯선 시간들』, 강, 2008.
『그 모든 낯선 시간들』(1975)은 고고학자이자 에세이스트인 로렌 아이슬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이 책이 양선규 소설가로부터 점수를 후하게 받는 걸 보고 메모해 두었다가 읽게 되었다.
아이슬리의 어머니는 남이 대신 고통받게끔 하는 데 재주가 있는 분이었고 아이슬리가 집밖으로 돌게끔 한다, 아버지는 그런 어머니를 견디며 아이를 위해 집을 떠나지 않았지만 임종 시엔 아이슬리 대신 배다른 큰형에게서 위로를 얻는다. 이처럼 이 책은 고고학자인 아이슬리가 시간여행을 하듯 자신의 지난 인생의 주요 지점을 들여다보고 때로 그리움으로, 때로 슬픔과 회한에 젖어 글을 쓴 것이다.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선 그림처럼 아이슬리의 자전적 소설은 사실적이고 서사적인 면과 시적이고 서정적인 면이 교차하면서 이건 뭐지 하는 의문스런 생각도 갖게 하지만 더 많은 시간은 매혹적인 서사에 서정에 빠지게 한다.
어머니와의 불화로 집 없는 아이처럼 된 아이슬리는 병아리 부화공장에서 일하며 화재 위험과 열악한 환경에 시달리다가 폐병을 앓게 되고, 몸이 나을 즈음 고향인 네브래스카 주를 벗어나 캔자스나 캘리포니아 주의 사막을 횡단하는 화물열차에 무단승차해서 공안원의 총이나 추락사의 위험 등 숱한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한다. 그때 만난 부랑자 한 명은 공산주의든 자본주의든 사람을 패서 줄을 세운다며 자신의 몸을 스스로 돌볼 것을 권한다. 아이슬리는 이 말이 자신의 이후 삶에 영향을 주었음을 인정한다.
아이슬리는 동물 학대를 참지 못하고 동물 해부에도 적응하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그것과 무관한 지난 시기의 뼈를 연구한다. 어릴 적 자신이 구해준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는 부활의 소리가 아직도 자신의 의식과 무의식을 쪼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이슬리는 자신이 처음 뗀 책으로 형이 읽어주다간 만 『로빈슨 크루소』를 꼽는다. 그 책을 읽으면서 지역 도서관을 책을 읽을 작정을 했고 실천도 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창작의 영감이나 삶에 영향을 준 책은 『가정 수족관 관리법』(유진 스미스, 1902)이란 실용서란다. 책에 따라 그가 직접 만든 수족관으로 인해 “생물 세계의 감독이자 지배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내 손에 쥐여졌던 것”이며, “우리가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주지 않는 한 살아남을 수 없는 생명에 책임감”을 느끼도록 해주었다는 것이다. 교과서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관찰에 오랜 시간을 들이게도 해주었다고 하니 아이슬리의 미래를 밝혔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다. 수족관에 들일 연못 생물을 얻으려다가 익사 위기를 겨우 모면한 일은 예외로 쳐야겠다.
아이슬리는 연못 모험을 언급하면서 그때 친하게 지냈던 친구의 이름도 언급한다. 그 친구는 성인이 되어 아이슬리의 책을 읽고 편지를 보내왔지만 아이슬리는 자신의 우정이 어떻게 배신당했는가를 알고 마음 아파한다. 교양 있게 잘 사는 집의 아들인 친구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연못에서 철수한 것이라고 뉘우침의 기색도 없이 말해왔기 때문이다. 친구가 새로 내민 손을 바로 잡지 못한 아이슬리는 그로부터 30년 후에야 친구에게 뒤늦게 전화를 시도하지만 연락은 닿지 않는다.
끝으로, 아이슬리가 크리스마스 즈음에 고양이가 보낸 메시지를 알아듣고 적었다는 시 한 편을 옮겨본다.
왜냐하면 나는
사랑한다 내 자신의 형태 너머 형태들을
그리고 유감이다 우리 사이 경계들이
잠언과도 같은 이 말의 원문이 궁금하지만, 자서전의 일반적인 틀이나 형태로부터 자유로운 그의 글쓰기를 통해 유추되어지는 것이 없지 않다. 아이슬리는 경직되지 않은 사고를 바탕으로 자유와 모험을 한껏 살며 소통의 신호를 보내오는 것 아닌가. 물론, 그의 신호를 받아서 깊이 소통하지 못하고 주변만 겉도는 듯한 경계선상의 고민은 나 또한 유감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