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야 / 정훈
취야(醉夜) / 정훈
심장을 터트려
내 몸뚱아리를 동댕이치고 싶은 석양
사람보다는 술이 좋더라
몸이 불타 이글거리면
내 위에 잘난 놈이 없어 좋더라
비분(悲憤)보다
차라리 술에는 위엄이 있어
쥐새끼 놈들을 호령 호령 해본다
배반한 사람들로 한 푸념도 아니고
타고난 내 불운에 항거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호망(浩茫)한 허공을 향하여
포효하는 것이다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거인이 된 것처럼 자랑스럽구나
왜 이리 하늘은
숨 막히도록 나지막한 것이냐
지구는 종선으로 흔들려서 호숩다
-『피 맺힌 연륜』, 박영사, 1958
감상 : 정훈 시인은 1911년 논산 출신으로 휘문고보에서 정지용의 가르침을 받았다. 논산은 1925년생 박용래와 1934년생 김관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정훈 시인은 대전 대흥동에, 박용래 시인은 대전 오류동에 자리 잡으면서 동백시회(1946), 호서문학회(1951-)로 이어지는 대전 문학의 산실이 되었지만 두 시인이 살았던 집은 보존되지 못하고 나란히 공영주차장이 되고 말았다.
워낙에 술로 전설이 된 시인, 박용래와 김관식에 묻혀 정훈 시인의 주량이나 술버릇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취야」를 읽으니 정훈 시인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술을 마시는 이유는 매번 다르겠지만 시인은 무슨 일인가 화가 치밀어 그 화를 어쩌지 못하고 자책하면서 술 있는 자리로 왔다. 그 술자리엔 잘난 놈의 자리가 없다. 술기운을 빌려 사회적 자아의 가면까지 내려놓은 시인은 점점 호기로워진다. 잃어버린 “위엄”을 찾고 거기서 더 나아가 “거인”이 된 기분마저 낸다. 어떻게 보면, 술은 아픈 구석을 술의 약발로 저렴하게 치료해주면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살게 해주는 거다.
시인은 “내가 술인지/ 술이 나인지” 경계도 없고 분리도 되지 않는 경지에 이르렀으니 애주 그 이상의 단계를 벌써 지나고 있음을 알겠다. 박용래가 폐주(廢酒) 단계에 이른 후배 김관식을 찾았을 때, 본인은 마시지 못하고 접대로 내놓은 술을 박용래가 마시는 걸 보고 목울대로 꿀꺽이는 소리를 냈다고 한다. 관주(觀酒)에 이어 폐주가 가장 지극한 단계라고 하지만 정훈 시인은 후배들을 보면서 주도 급수를 함부로 올리지 않은 듯하다. 술 약발을 듣게 하면서 호숩게(재밌게) 살려면 절주(節酒)의 묘를 부리는 게 나아 보인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