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예술의 주름들
나희덕, 『예술의 주름들』, 마음산책, 2021.
나희덕 시인은 책, 그림, 조각, 음악, 사진, 영화 등을 넘나들며 예술의 주름을 읽으려 한다. 주름은 예술가의 삶의 흔적과 체취가 예술에 반영된 흔적이다. “주름은 골짜기처럼 깊어/ 펼쳐들면 한 생애가 쏟아져나올 것 같았다”(「주름들」 중)는 시인의 자작시 그대로다. 삶의 이력은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이나 세계관과 결부되어 주름을 형성하고, 그 주름은 안팎의 상처로 인해 더 깊이 새겨지는 면도 있었을 것이다.
시인은 시 「주름들」을 꺼내기 전에 롤랑 바르트의 책 『애도 일기』와 『밝은 방』, 한설희 사진집 『엄마, 사라지지 마』를 먼저 소개한다. 바르트는 온실에서 찍은 어릴 적 어머니 사진 한 장으로 어머니란 존재의 본질을 보았다고 했다. 한설희는 아흔 살 노모의 모습을 2년 동안 사진으로 찍는다. 한설희에게 사진 찍기는 “숙련된 기술로 피사체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그 대상을 혼신의 힘으로 사랑하는 일이란 것을 배워나간” 것이라고 시인은 이해했다. 여기에 ‘사진 찍기’ 대신 ‘시 쓰기’를 넣으면 바로 시인 본인의 이야기도 될 것이다.
미술 관련해서는 고야, 자코메티, 콜비츠, 데이비드 호크니 등 익숙한 이름도 있지만 낯선 국내외 작가의 예술과 주름을 맛보게도 한다. 파울라 모데르존 베커도 생소한 이름이지만 누드 자화상을 그린 최초의 여성 화가인 데다 사망 당시 친분이 있었던 릴케가 「어느 여자 친구를 위하여」란 조시를 쓴 걸 감안하면 내게만 생소했을 뿐이다. 다만 파울라가 언니에게 준 편지 한 대목은 생소하면서도 익숙하게, 익숙하면서도 생소하게 묘한 감동과 여운을 준다.
<나는 뭔가가 되어가고 있어.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격렬하게 행복한 순간을 살고 있어>
이 문장을 두고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마음껏 그리면서 느끼는 말할 수 없는 충일감”의 표현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 “뭔가”가 되어가는 느낌으로 인해 자기 몸의 기름을 짜내며 불면의 밤을 보내는 작가와 예술가가 적잖을 것이다. 이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실체나 목표치가 그 “뭔가”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막연하게나마 “뭔가”는 낡은 틀, 낡은 세계를 깨고 더 나은 자신과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시인은 뮤리얼 루카이저의 시 「케터 콜비츠」에서 <한 여자가 삶의 진실을 말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세계는 터져버릴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하기도 했다. 이 시구의 취지가 여권 신장이나 전쟁 반대에 있을 수도 있겠으나 파괴를 통해 새롭게 거듭 나는 예술 본연의 길을 상징하는 걸로도 읽힌다.
나희덕 시인이 읽어낸 예술의 주름은 깊고, 아프고, 아름답다. 얼마간 이쪽의 주름으로 넘어오는 건 예사로 두면 될 일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