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에세이>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박희숙, 『그림은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북폴리오, 2004.
저자는 화가이면서 동시에 남의 그림 이야기를 들려주고 쓰는 작가다. 이 책은 주로 유명 화가의 모델 그림을 통해서 화가의 사랑이나 욕망을 조명해보고 화가의 굴곡진 삶을 몇몇 장면 위주로 줄여서 소개해준다.
그중에 파리 몽마르트에 오래 머물렀던 화가를 찾아본다. 왜소한 몸에 아버지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카바레 ‘물랭 루즈(빨간 풍차)’ 등의 직업여성들에게 위로를 얻었던 로트레크가 있다. 로트레크의 모델인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의 모델이기도 했는데, 발라동은 로트레크의 신체적 결함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연인관계는 사랑과 이별이 반복되면서 15년 동안 계속되었지만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는 그녀의 말에 관계는 끝이 난다”고 했지만, 실제 발라동이 로트레크에게 여러 번 구혼을 사실을 생각하면 감정의 진실은 당사자조차 확신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경우든 진실은 한 문장에 갇히지 않지만 저자는 그런 문장의 유혹을 견디며 또 쓰기도 해야 한다.
몽마르트 언덕 한 쪽, ‘세탁선’이라고 부르던 값싼 공동주택엔 피카소와 모딜리아니도 세 들어 있었다. 이후 두 사람의 그림 값은 세계에서 1, 2위를 다투게 되지만 둘의 삶은 극명하게 갈린다. 말년의 피카소는 부와 명예, 사랑까지 모든 걸 누렸지만, 모딜리아니는 그러지 못했다. 모딜리아니 그림 모델 중 저자는 베아트리스와 잔 에뷔테른을 언급한다. 시인이면서 저널리스트인 베아트리스와는 서로 얽매이는 걸 싫어한 끝에 헤어지고, 운명의 잔을 만난다. 잔을 만나서도 술을 끊지 못한 모딜리아니는 폐결핵으로 서른 중반의 나이로 죽고 둘째 아이를 임신한 잔도 뒤를 따른다. “그녀는 그의 사랑 없이는 자신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사랑의 위대함을 넘어선 사랑이었다”고 저자는 평한다.
책에 인용한 마지막 화가는 백색을 즐겨 사용했던 위트릴로다. 위트릴로는 로트레크의 연인이자 모델이었던 수잔 발라동의 아들이다. 모델에서 화가로 변신한 발라동은 위트릴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자신의 사랑을 찾아 새로운 삶을 사는 사이, 위트릴로는 열여덟 나이로 알콜중독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입원까지 한다. 그런 위트릴로에게 발라동은 붓을 잡게 한다. 위트릴로는 뒤에 포엘 부인을 만나서 안정을 찾는다. 피카소의 청색 시대에 비교할 만한 위트릴로의 백색 시대에 대해선, “어떤 곳에서도 적응하지 못하는 그의 성격과 음주는 위트릴로를 그림의 세계로 이끌어 주었고 현실이 주는 강렬한 허무와 절망을 화폭에 담아냈다. 절망 속에서도 자신의 예술을 꽃피웠던” 시절이라고 얘기한다.
화가의 욕망은 그림에 강력한 예술혼을 불어넣기도 하고 자신의 삶을 파괴시키기도 한다. 욕망이 평화로운 삶을 방해하는 면이 있기도 하지만 욕망대로 살 수도 없고, 욕망을 조절한다고 해도 인생이 평화로울 수만도 없다. 독자로서 욕망과 예술 그 사이에 호기심 어린 눈빛을 반짝이는 건 큰 실례는 아닐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