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디어 마더
이춘숙ㆍ정형민, 『디어 마더』, 책담, 2021.
-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쓴 여행 기록이다. 주로 날짜별 일기 형태로 갈무리해 둔 것을 아들의 사진과 함께 묶은 책이다. 어머니는 자신의 일기가 아들에게 줄 선물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적어두기도 했는데 이 책이 두 사람 모두에게 선물이 되고, 두 사람의 여정과 마음 자락을 좇는 독자에게도 선물이 되고 있다.
2007년 경북 산골 봉화에 어머니와 함께 내려온 아들. 어머니는 텃밭을 가꾸며 시골 생활에 적응하는 중에 히말라야를 다녀온 아들 이야기를 듣는다. “까그베니 마을에서 만났던 네팔 디디(누나)와 동네 염소 떼를 돌보며 혼자 사는 쿵가 할아버지, 그리고 600년이 넘은 티베트 사찰 얘기”에 전에 없이 어머니는 호기심을 보인 것이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와 함께 히말라야로 여행을 작정하고 실행한다. 2014년, 어머니 여든한 살의 이야기다. 아들은 다큐 영화를 만드는 감독답게 여행의 기록을 영상으로 만들었으니 영화 <무스탕 가는 길>(2017)이 바로 그것이다.
이후 까그베니 마을의 디디는 어머니와 함께 두 번이나 더 만나게 된다. 두 여인은 각자 나라의 말로도 잘 소통하는 걸로 아들은 보았다. 어머니는 낡은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골목의 아이에게 간식을 내어주는 디디를 참하게 보았나 보다. “보고 싶은 여인을 만난 듯 우리는 서로 손을 만지고 찻잔을 부딪친다”고 일기에 적었지만 어느 날의 기록엔 상대의 말을 알지 못하는 답답함을 얘기하기도 한다.
봉화로 돌아온 어머니는 까그베니의 아이들이, 미얀마의 아이들이, 세계의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기도한다. 아들이 여행지마다 듣는 어머니의 소원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고 사는 것이다. 세월호 아이들 걱정도 내내 이어진다. 법정 스님, 이태석 신부처럼 남을 위해 사는 삶을 가장 훌륭한 삶으로 여기고 아들에게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란다.
모자의 여행은 2016년 미얀마 여행, 2017년 카일라스 여행으로 이어지고,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2020)에 영상으로 담긴다. 걷거나 타거나, 국경에 막히거나 돌거나, 악천후에 시달리거나 별빛과 풍경에 반하거나 간에 어머니는 씩씩하다. 아슬아슬한 순간을 지나오면서도 어머니는 아들보다 용감해서 여행을 중간에서 끝내는 걸 싫어한다. 여행지에선 봉화 산골의 음식과 툇마루를 그리워하지만 막상 산골로 돌아온 어머니는 밖으로 나서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어머니의 그리움 일 순위는 일찍 사별한 남편이지만, 일기에 그 이상으로 등장하는 사람은 아들이다. 늘 아들을 반기고 딸의 소식을 기다리지만 아들의 말에 상처받는 날도 있다. 아들의 고집에 “내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도 없다면 다 무슨 소용인가”하며 속상한 심정을 남겨서 아들을 뜨끔하게 한다.
여행은 많은 걸 바꾸어 놓는다. 어머니는 평생을 괴롭히던 차멀미를 히말라야 여행 한 번으로 졸업했단다. 여행의 매력이 어디 그뿐이겠는가 마는 무스탕 가는 길도, 카일라스 가는 길도, 누군가에게 가는 길도 애초에 마음을 내지 않으면 시작할 수 없는 일이다. 마음을 내서 작정하고 떠나는 여행이 좋지만 책과 영상으로 여행 기분을 낼 자유 정도는 호사로 누려도 좋지 않을까. <무스탕 가는 길>이 살짝 궁금해진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