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 피재현

톰소여와허크 2022. 1. 21. 19:48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 피재현

 

 

아버지는 가을이 깊어지면 감 따러 오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감 따는 게 싫어 짜증을 냈다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아느냐고

감 따위 따서 뭐 하냐고

 

아버지 돌아가시고 다시 가을이 왔을 때

엄마는 내게 말했다

니 애비도 없는데 저 감은 따서 뭐 하냐

 

나는 별이 빛나는 감나무 아래에서

톱을 내려놓고 오래도록 울었다

 

-『원더우먼 윤채선, 걷는사람, 2020.

 

 

감상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1889)! 사이프러스 나무 위로 별빛이 소용돌이치는 그림과 이 시는 별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시 제목에서 왠지 시인이 고흐를 생각했을 것도 같다. 바깥으로 다닐 때가 많았던 고흐가 서른이 되어서야 아버지 교회가 있던 누에넨으로 돌아온다. 아버지한테 인정받지 못하는 설움을 고백하며 밀레 같은 화가에 비하여 아버지는 편협하다는 생각을 편지에 쓰기도 했다. 어머니 병간호를 고흐가 정성으로 하면서 아버지와 화해할 시간이 얼마간 있었다지만 아버지는 곧 돌아가시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고흐의 편지에 또 밀레가 등장한다.

나는 고통을 없애려고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가 그 자신을 가장 강력하게 표현하게 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밀레의 말을 고흐가 늘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박횽규 역,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이다.

시인의 시집 원더우먼 윤채선에 언급된 내용으로 미루어 보아, 시인의 아버지는 생전에 부지런히 일하시며 어머니에게 다정한 남편이었지만 자식에겐 살뜰하게 굴지는 않으셨나 보다. 어릴 때 자신과 놀아주지 않는 아버지를 자신이 어른이 되어서 거꾸로 아버지와 놀아주었다는 표현이 있는 걸로 보아 아버지와 심각하게 불화했던 고흐와는 거리가 있다.

다만, 어머니 관련 시편들을 읽다 보면, 개인이 져야 할 삶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늙고, 아프고, 헤어지는 인생의 피할 수 없는 고통을 묘사하면서도 시인은 감정몰입을 절제한다. 시의 내용이 무겁게 느껴지지 않도록 수사(修辭)에 재미도 주고 공도 들이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럼에도 건강을 잃어가는 어머니를 대하는 아래의 시구를 읽자면 술 없어도 비틀거리는 한때가 눈에 보이는 듯해서 슬픔에 동참하는 기분이 되고 만다.

술 한 잔 안 마시고 엄마와 걸어 보는 요양병원

일렁거리는 별과 칠적거리는 땅과

엄마와 또 나는

무엇에 취해서 이리 비틀거리나” (비틀거리다)

시인에게 별은 고흐 그림처럼 슬픔이 묻어 있다. “감 따러 오라고하는 아버지의 육성이 한때는 잔소리고 싫은 소리였다고 시인은 볼멘소리를 하지만 누군가의 기다림을 사는 시간이 소망스런 일임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아주 늦기 전에 알았다고 하더라도 지나간 시간은 반복되지 않고 돌아오지도 않는다. 요양병원에서 투정이 많아진 어머니도 이제 누군가의 기다림 그 밖의 시간으로 건너갔다.

남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고통과 슬픔을 예술과 문학으로 바꾸어 저장해두거나 울 만한 장소를 찾아 오래도록 우는 것일 테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