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야구의 영혼 / 장수철

톰소여와허크 2022. 3. 12. 22:05

야구의 영혼 / 장수철

 

외야석에 앉으면 야구의 영혼이 느껴졌다

그해의 모든 시즌이 끝난 홈구장의 외야석에 앉아

나는

시즌 첫 홈런을 맞은 투수의 와인드업을 흉내 내며

음울한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텅 빈 덕아웃에서는

야구의 영혼이 담배껌을 씹는 소리가 쓸쓸히 들려왔다

 

달리던 말에서 내려

뒤늦은 영혼의 당도를 기다리는 체로키 인디언처럼

야구의 영혼은

불 꺼진 스코어보드 위에 걸터앉아

잊고 있던 그해 마지막 시즌의 전력투구를 회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외야수의 글러브가 놓친 파울볼처럼 불구의 시간들이

펜스 밑에 처박히며 쌓여갔다

 

그새 나는 한 차례 짧고 단단한 바람을 맞는다

그게 야구의 영혼인 줄도 모르고.

야구연감에 기록된 역대 가장 절망적인 대진표를

열광의 시즌이 끝난 그해

텅 빈 청춘의 기억 위에 옮겨 적고 있었다

 

-『낭만적 루프탑과 고딕의 밤, 시와문화, 2022.

 

감상 : 2009년 함께 등단했던 장수철 시인이 While My Guitar Gently Weeps, 야구의 영혼등을 잇달아 발표할 때 시가 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 몇 번이나 시를 읽었던 기억이 난다. 초기엔 서울의 우리시행사에서, 나중엔 대전에서 몇 차례 만나서 술잔을 기울이고 시시한 시 이야기를 안주 삼기도 했지만 곧 나올 것 같은 그의 첫 시집은 예상보다 늦어져서 이제야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비틀즈의 노래를 차용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아버지는 귓방망이를 날렸네로 시작해서 굳은살이 박여 포스 글러브만 해진 아버지의 손바닥연식구처럼 살이 오른 내 슬픈 청춘의 뺨을 기세 좋게 올려붙였다는 시구가 너무 강렬해서 야구 관련 시가 아닌데도 야구 이야기로 착각하게 만든다.

애증의 파고를 지나왔을 화자는 아버지의 늘어진 러닝셔츠의 어깨끈을 마주하며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 어깨끈을 기타줄인 양 튕기며 조율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를 생의 불안한 코드에 맞춰 / 질겅질겅 목가풍으로 노래를 시작한다.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를 서정 짙은 비유로 풀어놓는 솜씨도 예사롭지 않지만 장수철 시인은 여기에 더해 뛰어난 기타 연주 솜씨까지 갖추고 있으니 여차했으면 비틀즈의 길을 갈 뻔도 했을 것이다.

야구의 영혼While My Guitar Gently Weeps와 다르게 실제 야구가 창작 동기로 작용한 걸로 보인다. 인용된 야구의 영혼은 화려하거나 잘나가는 선수의 모습이 아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홈런을 맞거나, 파울볼을 놓치는 동료의 실수로 패를 떠안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장면이 연상된다. 조금 더 극적으로 과장하면, 소설가 박민규가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소개한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 야구를 함으로써 늘 패배하는 야구단 선수를 닮았다.

결실을 가져가는 승과 화딱지만 쌓이는 패로 극명하게 갈리는 야구 승부는 과정 자체를 즐기기 어렵게 만든다. 쉬지 않고 단련해서 투수는 타자가 안타를 못 치게 해야 되고, 타자는 안타를 쳐야 살아남는다. 방어율과 타율이 연봉으로 계산되어 나오고, 인기의 정도가 상품 가치로 환원되는 시스템은 자본주의 속성 그대로다. 홈런을 자주 맞거나 파울볼을 거듭 놓치는 선수에겐 다음 기회가 아예 사라지기도 한다. 잔인하게도 데뷔 경기가 고별 경기가 되는 경우도 있다. 늦게 오는 영혼을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체로키 인디언의 마음은 프로답지 않은 거라고 자본주의는 악마처럼 속삭여 줄 것이다.

시인이 주목했던 야구의 영혼도 한때는 전력투구의 기억을 갖고 조명을 받았던 주축 선수였을 것이지만 연봉 삭감과 퇴출 위기에 직면해 있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시선은 이처럼 영광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불구의 시간에 닿아 있다. 상처 입은 영혼들을 뒤좇고 추억하며 함께 쓸쓸한 시간을 견디는 쪽에 시인은 서 있는 것이다. 당시 시인의 내면 풍경이 야구의 영혼의 그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다.

현실의 비정함과 삭막함이 절망적인 대진표로 미리 주어지는 승자 독식의 자본 세계에 무명과 유명의 선수를 가르지 않고 돈으로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 세상, 이기지 않으려는 작정이 결실하고 지고도 웃는 세상은 소설에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세상을 향해 전력투구하려는 시인의 와인드업은 쓸쓸하면서도 우아해 보인다. 장수철 시인이 선보인 야구의 영혼은 내게로 건너와 졸시 한 편을 주었다. 제법 공 던지는 시늉은 해보았지만 구속은 잴 만한 것이 못 될 것이다.

다음에 시인과 대전역에서 만난다면, 야구연습장을 찾아 방망이 솜씨를 겨뤄 봐도 좋을 것이다. 이기면 막걸리 사고, 지면 막걸리 먹으면 괜찮은 흥정이다. 야구의 영혼이 누구에게 들지 기대가 된다.

 

야구의 영혼에 씌다 / 이동훈

 

잠결에 야구의 영혼*이 들어오지.

자리에서 쓱 일어나

내복 유니폼으로 방문을 나가지.

창밖은 꺼질 줄 모르는 광고판 조명.

새시 문에 얼비치는 내 모습은

왼 다리를 천천히 올리지.

몸을 바로 세워 균형을 잡고 던지기 자세로 들어가지.

왼팔은 던지는 방향으로 두고

오른팔은 엉덩이 뒤로 뺐다가 어깨 위로 넘어오지.

디딤 발로 몸의 중심을 옮기며

공 던지는 시늉을 하는 거지.

상대가 없으니 싱겁긴 해도 참 열심이지.

몸이 풀린 야구의 영혼은

왼 다리를 더 높이 치켜 올리지.

몸을 뒤로 꼬았다가 풀면서 가슴을 내밀지.

팔 회전을 크게 하고 손목 스냅으로 채면서

그 쏠리는 힘으로, 전력으로 날아가는 거지.

그렇게 나를 던졌으면

넌 절대 나를 맞추지 못했을 테지.

꼼짝없이 맞아 날아갈 거였다면

한번쯤 저 광고판에 작렬하여 불꽃으로 터졌으면 싶지.

이 밤도 몸을 풀다가

스르르 빠져나가는 야구의 영혼.

자면서도 손바닥을 둥글게 마는 것은

폭포수처럼 꺾이는 마구를 익히려는 거지.

너에게 나를 소리치고 싶은 거지.

 

* 장수철의 시, 야구의 영혼에서 빌림.

-몽실 탁구장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