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고래의 생활난

톰소여와허크 2022. 4. 13. 22:19

 
고래의 생활난 / 신휘
 
한 봉에 칠백 원짜리 안성탕면을 생으로 입에 넣고
씹다 보면 삶이,
그것이 마젤란 해협의 그것처럼 길고 멀게 느껴지지
허나 허기진 배에 물이라도 한 사발 들이켜고 나면 희망이,
그것이 아프리카 최남단의 흰수염고래처럼 금세 부풀어 오른다
 
꼬로륵 꼬로륵 며칠 동안 희망과 절망을 오가며 배앓이 하다 보면 마침내
눈에 뵈던 헛것이 걷히고 세상 물빛이 달리 보이는 건,
내 안에 거대한 고래가 살고 있기 때문
 
그런 날이면 꼭 사달이 났다
보일 듯 말 듯, 그럼에도 하늘과 바다를 경계로
교묘히 헤엄쳐 온 고래의 생활난은
웬만해선 파도 앞에 자신의 배를 뒤집어
물 밑 풍경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
 
이따금 수면 위로 핍진한 가계의 밥 짓는 연기만 피워 올릴 뿐
다시 먼 바다로 나아간 고래는 한동안 쉽게
모습 드러내 보이지 않는 것이다
 
- 『꽃이라는 말이 있다』(모악, 2019) / 『추파를 던지다』(학이사, 2022) 재수록
 
 
* 감상 - 농부가 직업인 시인은 닭도 키우고 알도 챙기는 근황을 페북으로 공개하기도 한다.「공자의 생활난」을 쓴 김수영도 한때 양계를 직업으로 삼기도 했다. 신휘 시인이 「고래의 생활난」을 제목으로 뽑은 것도 이와 무관해 보이진 않는다. 「공자의 생활난」에서 공자란 이름을 쓴 이유도 퍼뜩 오지 않는데 「고래의 생활난」에서 고래란 이름을 빌려온 이유도 얼른 오지는 않는다. 다만, 공자든 고래든 생활난으로 고통받는 것만은 엄연한 현실이다.
김수영은 「공자의 생활난」을 통해 모호한 시구 속에서도 “사물의 우매와 사물의 명석성”을 바로 보겠다고 밝히더니 점차 그런 시 세계를 추구해 나갔다. 신휘는 「고래의 생활난」을 통해 공자보다 더 생경한 제목과 그로 인해 연상되는 비유적 표현을 끌어와서 시적 긴장이나 효과를 꾀하고 있지만 그 내용은 어디까지나 생활에 밀착되어 있다.
생라면을 씹고 물로 배를 채우는 가난 속에 부풀 대로 부푼 배는, 마침내 덩치가 유난한 흰수염고래의 이미지로 연결된다. 흰수염고래는 가난을 부풀린 절망의 상징도 되지만 헛것을 걷어내며 바다를 헤집고 나아가는 희망의 이미지도 투사된 느낌을 준다. 그런즉, 고래가 끝내 보여주지 못한 “물 밑 풍경” 역시 생활의 참담함을 보여주는 풍경인 동시에 그 참담함 속에서 손상되지 않는 진실한 세계 모습도 함께 함의하고 있는 걸로 보이는 것이다.
시집 『추파를 던지다』는 신휘 시인의 시에 유건상 조각가의 조각 작품이 어울린 특별한 우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고래의 생활난」과 관련해서 조각가는 고래가 점프했다가 바다에 입수하는 장면을 조각해두었다. 하얀 원통 물결에 꼬리만 남은 고래. 그런 고래를 두고 절망이냐?, 희망이냐? 시인에게 또 조각가에게 묻는 것은, 먼 바다로 나아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고래를 기다리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일 것이다. 그래도 넌지시 물어봐도 큰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지만 혹, 술안주로 닭알을 청한다면 어떨지 모르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