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정릉 / 박병대

톰소여와허크 2022. 4. 21. 19:56

정릉 / 박병대

 

정릉 마당은 햇빛 없는 밝음이었다

날아온 까치 촐싹대며 꽁지깃을 까딱거리고

태풍 지나간 잠든 바람에 단잠 자는 나뭇잎

왕사(王沙)의 신음이 발밑에서 뿌드득거린다

서넛의 여인네 웃음소리 봉분으로 날아가니

외로운 신덕왕후 번쩍 눈뜨는 소리가 났다

 

돌아앉아 교교히 흘러 낙차하는 도랑물 바라보니

가는 길 묻지도 않고 하는 이야기

귀 기울이니 낮은 사랑을 하라고 한다

낮은 생명 보듬고 맑은 숨 쉬라고 한다

슬퍼지면 저처럼 노래하라고 한다

평생의 부끄러움이 도랑물처럼 밀려왔다

 

도랑 건너편 석벽에 눈 맞추니

돌 위에 앉은 돌이 윗돌 받침 되어

받침이 받침으로 결속된 돌들은

형이상학과 형이하학을 한 몸에 지닌

아름다운 믿음과 신뢰의 인드라망이었다

발아래 개미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푸른 별의 역사는 푸른 글씨로 쓴다, 불교문예, 2022

 

 

감상 서울 강남의 정릉은 중종의 묘이고, 강북의 정릉은 태조의 비인 신덕왕후의 묘이다. 신덕왕후는 자기 아들을 세자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왕자의 난을 누르지 못하고 두 아들의 죽음을 지켜보아야 했던 비운의 왕후다. 왕후의 무덤은 광화문 일대에 조성되었다가 태조의 죽음 이후 바깥으로 내쳐져 지금의 성북구 정릉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성북구 성북동 쪽엔 길상사, 간송미술관이 있고 한용운(심우장), 이태준(수연산방), 김용준(노시산방- 김환기 부부가 수향산방이라 고쳐 부름)의 흔적도 이곳에 집중되어 있다. 상대적으로 정릉동 쪽은 언급이 덜 된 분위기인데 근래 정릉 시대전(성북구립미술관, 2018)’ 이후 조명을 받고 있는 듯하다.

우선, 산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 박고석을 꼽을 수 있다. 피난지 부산에서 의기투합했던 이중섭, 한묵 등이 서울 수복 이후 박고석의 정릉 집과 이웃에 모여 살기도 했다. 소설가 박경리는 토지를 쓰느라 심혈을 다하는 중에 박고석의 집을 종종 오가며 지냈다고 한다. 시인 김종삼도 이곳 산꼭대기에 세들어 살면서 아리랑고개 지나 길음시장까지 자주 내왕했다. 현재, 신경림 시인도 길음시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다. 아쉬운 것은 이들 예술가들의 자취가 옆동네 이태준 집(수연산방)처럼 특정되고 관리되면 좋을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정릉에 사는 박병대 시인은 자신이 사는 고장을 계속 걸으며 정릉의 사람, 정릉의 사물과 자연에 대해서 말을 건네고 듣는다. 정릉을 사랑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시집 정릉 마을정릉천 물소리로 결실한 바 있기도 하다. 이번 시집에서도 정릉 마당과 주변을 걷는 시인의 모습이 몇 편 보인다.

정릉에 묻힌 신덕왕후나 정릉에서 뿌리내리지 못한 주변 사람들의 사연은 어두울 수 있겠지만 막상, 시인이 소개하는 정릉 마당의 분위기는 평화로워 보인다. “햇빛 없는 밝음이라니 햇빛이 닿으면 닿은 대로 평화로울 듯하고 햇빛이 닿지 않더라도 밝음에 이끌려 있으니 그 평화는 손상되지 않는다. 거리의 철학자기 된 시인은 정릉을 지나는 도랑물에서 사랑의 자세를 배우고, 석벽의 짜임새에서조차 삶의 이치와 자세를 생각한다.

언제일지 모르겠지만, 박병대 시인을 정릉에서 만나게 된다면 졸시집 몽실 탁구장을 비치해두었더라는 귀한 찻집에 들렀다가, 버스 타고 아리랑고개 너머 길음시장에 닿아 막걸리 한 잔 받아두고 정릉 이야기에 푹 빠져보고 싶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