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져가는 미술관 / 이상화
쓰러져가는 미술관
어려서 돌아간 「인순」의 신령에게 / 이상화
옛 생각 많은 봄철이 불타오를 때
사납게 미친 모-든 욕망-회한을 가슴에 안고
나는 널 속을 꿈꾸는 이불에 묻혔어라.
쪼각쪼각 흩어진 내 생각은 민첩하게도
오는 날 묵은 해 뫼 너머 구름 위를 더우잡으며
말 못할 미궁(迷宮)에 헤맬 때 나는 보았노라.
진흙 칠한 하늘이 나직하게 덮여
야릇한 그늘 끼인 냄새가 떠도는 검은 놀 안에
오 나의 미술관! 네가 게서 섰음을 내가 보았노라.
내 가슴의 도장에 숨어사는 어린 신령아!
세상이 둥근지 모난지 모르던 그날 그날
내가 네 앞에서 부르던 노래를 아직도 못 잊노라.
클레오파트라의 코와 모나리-자의 손을 가진
어린 요정아! 내 혼을 가져간 요정아!
가차운 먼 길을 밟고 가는 너야 나를 데리고 가라.
오늘은 임자도 없는 무덤- 쓰러져가는 미술관아
잠자지 않는 그날의 기억을 안고 안고
너를 그리노라 우는 웃음으로 살다 죽을 나를 불러라.
- 『상화와 고월』(1951)
감상 : 『두 발을 못 뻗는 이 땅이 애달파』(이상규, 2021)에 이상화 시인에 대한 흥미로운 신문 삽화와 기사가 인용되어 있다. ‘만화자(만화가)가 본 문인란’(《조선중앙일보》,1927.11.17.)에 안석주가 그린 이상화 캐리커처와 함께 이상화에게 여자가 따르는 염복(艶福)이 있다는 기사가 실린 걸 소개한 것이다.
이상화에게 염복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반쯤 의문이 드는 것은 장티푸스로 죽은 인순, 사랑을 결실하지 못한 손필연, 폐를 앓다가 죽은 유보화에서 보듯 연애의 끝이 쓸쓸하기 때문이다. 「쓰러져가는 미술관」 그 부제에 등장하는 인순이는 서울의 중앙고보에 다니던 이상화가 고향 대구에 다니러 왔다가 만난 인물이다. 절친한 고향 선배인 박태원(음악가)의 소개로 만나서 연인이 되었단다. 하지만 인순이의 갑작스런 죽음에 맞닥뜨린 이상화는 그 충격으로 학교 졸업을 포기하고 금강산 기행에 나선다. 인순이 관련 이야기는 이정수의 소설 『마돈나 시인, 이상화』(1984)에서 그럴듯하게 포장되고, 이를 김학동 『이상화 평전』에서 재인용하면서 사실인 양 굳어진 면이 있지만 그 출처가 불분명한 얘기임을 이상규는 언급한다. 이상규의 입장은 이상화의 시를 그의 연애사와 일부러 또는 무리하게 연결 짓는 주변의 태도를 비판하는 쪽이다.
「쓰러져가는 미술관」은 이상화 사후, 『상화와 고월』(1951)에 실린 16편의 시에 포함되어 있고 이전에 발표된 흔적은 없다. ‘어려서 돌아간 「인순」의 신령에게’란 부제도 어쩌면 이상화를 잘 아는 백기만이 불필요하게 덧붙인 것일 수도 있겠다. 연애담을 풍류와 호기로 보는 당시의 분위기에 편승한 면도 있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 하더라도 백기만이 이상화 시인을 호도하려는 의도는 없었을 것으로 본다. 백기만은 생전에 자기 시집을 엮지 못했지만 『상화와 고월』(1951), 『씨 뿌린 사람들』(1959)을 통해 이상화와 이장희를 세상에 거듭 알리는 결정적 역할을 해낸 장본인이다.
「쓰러져가는 미술관」을 다시 볼 것 같으면, 특정 모델과 그 모델을 둘러싼 배경이 한 폭의 그림이 되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앞서 이상규의 걱정처럼 개인사와 연결하여 모델을 ‘인순’이란 여인으로 못 박아 두는 것은 시의 감흥을 줄이는 일이다. 개인적으론, 이상화 시인의 수감 생활 중에 죽었다는 둘째 아이가 연상되기도 한다. “하늘보다 더 미덥던 우리 웅히야 / 이 세상엔 하나밖에 없던 웅히야 / 너를 언제나 안아나 줄고” (「哭子詞」(곡자사), 1929) 하며 애달아하는 아버지 정이 사무치는 시편인데 끝내 무덤으로 귀결되고 마는 그 상실감이 서로 통하는 작품이다.
「쓰러져가는 미술관」은 그림틀에 놓인 대상 혹은 그림 한 폭이 주는 인상이 상당히 강렬하다. 특히 이 시의 묘미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그림 한 폭이 미술관 자체와 등가물을 이루게 하는 데 있다. 절실한 마음으로 가장 보고 싶은 그림 한 점이 미술관에 있다면 더도 덜도 말고 그림 한 점이 곧 미술관이라 한들 별 과장도 아닐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 사랑하는 사람을 둘러싼 배경은 진흙 하늘에 검은 놀로 덧칠되어 어둡고 처연하다. 뭉크 그림에 깃든 어둠과 닮은 데가 있어 보이는데 이웃집 친구로 지내다가 먼저 세상을 버린 이장희 시인이 뭉크 그림을 좋아했다는 증언이 있다. 그러고 보니, 이상화의 「나의 침실로」에 등장하는 마돈나도 왠지, 뭉크의 <마돈나>와 일정 부분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하게 된다.
부활의 동굴을 꿈꾸며 희망을 잃지 않던 이상화 시인이지만 쓰러져가는 미술관처럼 나라의 운명도, 불운한 사랑도 자꾸만 기울어가는 걸 어쩌지 못한다. 시인은 뭉크의 <절규>처럼 귀를 막고 비명을 지를지언정 양심에 어긋한 행동을 끝내 하지 않았다. 그가 태어난 대구 서성로 집(라일락 뜨락)엔 몸을 틀면서 옆으로 자란 라일락 나무가 있다. 이 나무 아래서 누군가에게 들려줄 노래 한 곡조를 이상화 시인이 불렀을 성싶다. 이상화를 읽고 라일락 고목에게 가면 고목은 자신이 간직한 가장 아름다운 향을 선물해 줄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