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벽오금학도
이외수, 『벽오금학도』, 동문선, 1992.( 해냄, 2014)
이쪽 세상과 저쪽 세상(선계)을 잇는 묵림소선의 그림 한 장.
족자 속 그림엔 금학 한 마리가 날개를 펴서 벽오동나무 위로 내려앉고 아래에 있던 동자 한 명이 그걸 무심히 쳐다보는 광경이 나온다. 주인공 은백이 우연찮게 건너간 선계에서 얻은 그림이다. 선계에선 금학이 자유롭게 오가고 그림을 뚫고 나오기도 한다. 은백은 자신의 이름처럼 머리가 하얗게 세어서 이쪽 세상으로 건너온다. 들고온 그림만이 저쪽 세상과 연결되는 유일한 열쇠인데 비밀의 문을 열기 위해선 인연 있는 이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게 소설 기본 얼개로 작용하고 있다.
은백의 고향집은 농월당이다. 반은 신선 같은 할아버지, 집을 비운 아버지, 일찍 돌아가신 어머니 대신 할머니가 아이를 돌본다. 마을 들판 앞으로 무영강이 흐르고 건너편은 도량산이다. 이 사이에 늘 안개가 끼여 있다.
이외수 작가의 고향이 함양이고 여기서 상내백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전학 간 것을 고려하면, 소설 속 농월당은 함양 농월정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실제 이외수도 어린 시절,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현재 농월정은 2003년에 전소되어 새로 지은 것이지만, 농월정에서 동호정, 군자정, 거연정으로 이어지는 화림동 계곡과 남강의 모습이 예전과 크게 다를 것 같지는 않다. 이곳은 황석산, 대봉산 등 1000미터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무영강이 그러하듯 산안개도 물안개도 수시로 생겨 신비감을 준다. 하지만, 농월당을 둘러싼 이야기의 실제 배경이 함양이 맞는지에 대해선 고인이 된 작가가 답할 수 없게 되었다.
도(道)를 아십니까? 소설에서 빠져나오면서 떠오른 말이다. 도는 길이면서, 삶을 살아가는 도리요 방책이기도 하다. 이외수의 『벽오금학도』에 나오는 일련의 사건들은 그런 도를 구하며 선계에 닿으려는 소망이 작용한 요인이 크다. 현실을 바꾸거나 현실의 유의미한 개선을 바라는 부분이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그런 도식적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도를 깨치거나 선계에 닿으려는 매개를 그림(圖)으로 하는 것도 흥미롭다. 현실 속 구도의 길은 암만 발분해도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소설 속 은백도 그림을 보고 자신을 안내해줄 이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길에서의 만남, 인연이 다음 길을 열어가는 서사를 형성하는데 애초에 선계를 안내했던 무덕선인의 현실 분신인 바보 삼룡이 이야기도 인상 깊다.
벚나무 꼭대기에 올라가서 엎드려 있기를 좋아하는 삼룡이에게 왜 거기까지 올라가느냐고 마을 사람들이 물으면 삼룡이는 올라가보면 안다고 바보답지 않게 말한다. 소설이 좋은지 어떤지도 결국 읽어봐야 알게 되는 일일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