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 / 변홍철
달리 씨네 쌀 배달하기 / 변홍철
나는 자동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는데
주인이 쌀 배달을 나가라고 한다.
어깨에 쌀 한 가마니를 얹고 달렸다.
십 리가 넘는 길이라고 했다.
알 듯한 얼굴의 세 인물이
동행이랍시고 따라나섰는데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자기들끼리 찧고 까분다.
누렇게 벼가 익은 들판이다
저기에는 복사꽃이 환하게 핀
풍경은 아름다운 그림 속.
소나기도 내리고, 나는 흠뻑 젖었는데
이상하게 별로 힘은 들지 않는다.
아니 힘은 펄펄 남아돌아 한참을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배달 가는 집을 못 찾겠어서 짜증이 난다.
휴대폰도 없는 나는 뒤에서 찧고 까부는 이들에게서
전화기를 빌려 쌀 배달시킨 집 주인이랑 통화,
어, 아는 목소리다. 푸른 기와집에 산다고 했던가.
친절하긴 한데 설명이 너무 길다.
용건만 간단히 말하라고 조금 짜증을 냈다.
겨우 위치를 확인하고
다시 쌀가마니를 어깨에 얹으려는데,
아뿔사, 비에 젖었던 쌀이 벌써 밥이 다 됐다가
어느새 식어버렸다.
동행한 인간들은 어디서
맛있어 보이는 김치 한 보자기를 얻어 와서는
밥 먹고 가자고 떼를 쓴다. 겨우 떼어내고
그래도 배달하는 게 내 일이니
찬밥이 다 돼 버린 쌀이지만
일단 갖다주고 자초지종을 설명해야 한다고
도움 안 되던 동행들은 어느새
영감 할마시가 되어서, 자기들은 더 못 가겠으니
갔다 와서 막걸리나 같이 마시자 한다.
나는 자동차도 없고 자전거도 없고 휴대폰도 없는데
주인이 또 배달을 나가라고 한다.
길을 질퍽거리고, 나는 매번 허기가 진다.
- 『이파리 같은 새말 하나』, 삶창, 2022.
감상 – 정신분석학의 문을 연 사람은 프로이트다. 인간 무의식에 주목하여 인간 행동을 이해하는 단서를 무의식에서 찾는 이론을 정립시킨 장본인이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이해하는 방편으로 꿈 해석을 적극 시도했다. 현실에서 억압된 욕망이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다가 꿈으로 발현된다고 했다. 다만, 욕망이 위장되거나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기에 꿈 해석을 통해 욕망을 바로 알아차리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프로이트나 융이 그랬듯이 자신과 남의 꿈을 분석해서 억압된 욕망을 알아차리거나 안내해준다면 삶을 사는 데 퍽 요긴한 일이 될 것이다. 변홍철 시인이 자신의 꿈 내용을 메모해 두었을 때도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애초에 있었을 것이다.
대개의 꿈이 그렇듯 시인의 꿈도 논리와 인과를 초월해 진행된다. 쌀가게 주인의 요구대로 쌀 배달을 나가는데, 어떤 이동 수단도 지원되지 않고 어떤 누구도 도움 주지 않는다. 배달 주소가 불분명하고 집 주인이 불친절해서 짜증도 난다. 그런 중에 쌀은 엉뚱하게도 밥이 되어 식어버리고 자신은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싶어 한다.
꿈 분석은 꿈의 재료가 된 현실 경험이나 욕망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꿈을 꾼 시인이 꿈 분석을 제일 정확하게 할 수 있겠지만 이왕에 시의 형태를 빌려 세상에 내놓았으니 제 삼자의 의견도 기대가 된다. 내가 보는 꿈의 주인공은 스스로 짐을 진 자다. 그 무게를 나누고 싶어도 동행은 그럴 의사를 내비치지 않는다. 쉬어 가기를 바라고, 밥과 막걸리를 탐하는 동행은 무의식중에 그런 걸 추구하는 또 다른 자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도덕과 양심으로 무장된 의식적 자아는 무의식이 그리는 낭만적 자아를 영감, 할마씨까지 만들어가며 애써 거리를 두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현실 무게와 책임감에 눌려 힘들어지는 면도 있을 것이다.
꿈 분석 결과, 낭만과의 동행도 일정 부분 고려해보는 게 어떠냐는 어중이떠중이의 해석지를 시인에게 내밀 생각은 없다. 시에서 느껴지는 유머가 시의 제목에도 또 보이는 걸 보면 시인은 이미 낭만파다. 쌀 배달하는 달리 씨는 내내 달리는 달리 씨고, 프로이트의 이론을 그림으로 전폭 수용한 화가 달리 씨이기도 하다. 배달 가는 달리 씨를 만나거든 짐을 나누어 지지는 못하더라도 목 축일 막걸리 한 잔을 먼저 건네는 정은 있어야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