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임창아,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학이사, 2020.
이것을 견디지 않을 수 있을까?
수없이 나를 의심했다
자주 불가능해서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
위의 글은 최문자 시인의 시집 『우리가 훔친 것들이 만발한다』의 자서다. 생략과 역설의 묘미가 섞인 문장이라서 바로 와 닿지는 않지만 시집의 자서인 것을 감안하면, 자신의 시를 스스로 견디는 일이 어렵다는 말로 들린다. 더 절실하고 더 나은 어떤 경지에 미치지 못함을 인정하면서 그 한계를 슬퍼하는 진정성이 울림을 준다. 임창아 시인은 이 구절을 산문집 제목으로 차용했다. 견디지 않고, 의심하지 않고, 슬퍼하지 않고 쏟아지는 기성품 같은 작품을 신뢰하지 못하는 시인의 인식이 엿보인다. 몸과 마음을 앓아가며 글을 쓰면서 이전에 없는, 있어도 구별되는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싶다는 간절함이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이다.
『슬퍼할 자신이 생겼다』는 출판사 시리즈물 ‘산문의 거울’ 그 첫 번째 산문이며, 시인이 읽고 지나온 많은 책들의 흔적이 담겨 있다. 특정 작가를 얘기하는 자리에도 작품뿐만 아니라 관련 그림. 영화, 음악을 불러와서 이야기의 깊이와 풍성함을 더해준다.
변희수 시인을 만난 자리에서 시는 절박한 마음으로 쥐어짜는 거라고 했다. 지독한 몽상으로 언어의 심층에 가 닿기를 바라는 주체는 변희수 시인이기도 하고, 임창아 시인 본인일 것도 같다. 인용 부호를 줄이면서 누구 말인지 애매한 부분이 생겼지만 시로 의기투합한 모습이다. 표현주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그림이 화가 안의 모든 감각의 밸브를 열어준다고 말했단다. 임창아 시인은 ‘세상 모든 언어의 밸브를 열어주는 시인’으로 변희수 시인을 생각한다. 독자로서 프랜시스의 그림이, 변희수의 시가 궁금해진다.
‘자화상’을 얘기하는 마당에선, “다른 냄새와 뒤섞여도 본질을 잃지 않는, 다른 사물에게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존재하는” 고독한 냄새로 서두를 꺼낸다. 사랑의 상실 등 살면서 마주하는 절망적 상황 중에 시인은 자기 삶의 색깔 혹은 냄새를 잃어버리는 것이 가장 큰 상실이란다. 또 ‘질병과 창조의 자화상’으로 프리다 칼로, 안토니오 비발디, 로베르트 슈만의 경우를 소개한 뒤에,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를 언급한다. 알레르기 공포, 심장판막증, 신경쇠약에 시달린 프루스트는 자전적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남겼는데, “자기연민에서 비롯된 자학이나 가학의 칼끝이 자신을 향해 있으므로 명작이 탄생”한 것으로 시인은 파악한다.
시인의 마지막 글은 레퀴엠에 관한 것이다. 릴케를 인용하며 사랑하는 것보다 놓아주는 것에 대해서 더 고민해 보기를 원한다. 시인이 좋아하는 단어 중에 ‘부딪치다’도 있다. 에드거 앨런 포가 죽음과 부딪치며 명작을 남겼듯이 우울과 부딪치는 작가들도, 힘든 시기를 지나는 사람들도 그 부딪침 속에 기회가 있을 거란 말도 잊지 않는다.
4층 도서관에서 일하기도 했던 시인은 죽을 사(死)로 인해 남들이 기피하는 4층을 오히려 좋아한다. 조망도 어느 정도 있고 키 큰 나무의 우듬지를 볼 수 있다는 모던 4층 이야기를 들으면, 4층에 사는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시인과 일층이나 이층에서 두어 번 만나 이런 얘기를 들은 듯도 하고 아닌 듯도 하다. 6층 이상 사는 건 정말 인간적이지 않다는 얘기를 보탰는지 어땠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어떤 일도 자신 못하는 건 내 기억의 불충분일 뿐, 이런 일로 슬퍼할 이유는 없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