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시인들의 술상 / 김완

톰소여와허크 2022. 8. 5. 07:17

시인들의 술상 / 김완

 

 

시인들의 술상이 너무 고급이다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안주에서는

기름지고 뚱뚱한 시가 나오기 마련

한 그릇 국밥에 맑은 영혼을 말아

깍두기 한 접시 된장에 찍어 먹는

양파, 매운 고추면 만족해야 하리

피와 땀과 눈물에 경배하며

세상에 길들여지지 않는 정신으로

푸른 하늘의 자유를 노래해야 하리

이 세상의 온갖 상처를 안주 삼아

막걸리 한 병 소주 한 병이면 족해야 하리

지상의 낮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가

아물지 않는 상처에서 희망의 꽃

다시 피울 그날까지 기다려야 하리

선악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일수록

허기가 정신을 맑게 한다는 말

온몸에, 뜨거운 가슴에 새겨야 하리

 

지상의 말들, 천년의시작, 2022.

 

 

감상 온몸으로 밀고 나가서 시를 쓸 것을 주문하면서, “어째서 자유에는 /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푸른 하늘을)를 물었던 이는 김수영이다. 음악과 함께 어린이가 다치지 않는 평화가 있는 곳을 꿈꾸며, “엄청난 고생 되어도 / 순하고 명랑하고 맘 좋고 인정이 / 있으므로 슬기롭게 사는 사람들”(누군가 나에게 물었다)이 다름 아닌 시인이라고 얘기한 사람은 김종삼이다. 종종 술자리에서 어울리기도 했던 두 사람은 어느 술자리에선가 시에서 폼 잡지 마라는 김수영의 말에 김종삼이 이를 받아들지 못하고 욱해서 다투었던 일화도 있다.

뒤에 김종삼의 시인학교에 김수영을 빼놓지 않을 걸 보면, 그때의 김수영의 말이 김종삼의 시의 방향에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원고료 등을 술값으로 내놓지 않아서 한때 노랭이로 불렸던 김수영이나, 늘 돈에 쪼들렸던 김종삼이고 보면 두 사람이 술을 지극히 좋아한 반면에 비싼 안주를 앞에 두고 있는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종삼은 안주 없이 강소주를 주로 마셨다. 김종삼에게조차 손바닥을 내밀어 돈을 얻어가던 천상병도 남에게 술을 사는 데는 인색했다. 가난이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나온 김종삼은 천상병이 그랬던 것처럼 남에게 손바닥을 내밀어 돈을 얻어가기도 했다.

김수영, 김종삼, 천상병 시인뿐만 아니라, 국숫집 아이 이용악, 울보 박용래, 신문배달과 사환 일을 했던 박재삼, 무허가 판잣집의 김관식도 어려서든 나이 들어서든 가난한 생활을 하거나 이어갔다. 그런 중에 술을 지극히 좋아하여 술병()을 넘어뜨리고 술병()을 얻었다. 술병보다 오래 남을 게 분명한 시편들도 얻었다. 이들 시인과 사치스러운 안주는 촌수가 꽤 멀어 보인다. 더욱이 기름지고 뚱뚱한 시와는 거리가 먼먼 부류다.

이들의 시가 사랑받는 이유를 김완 시인의 표현에서 짐작해 보자면, “피와 땀과 눈물에 경배하는 시작(詩作) 태도를 우선 꼽을 수 있겠다. , , 눈물에 대한 경배는 삶의 진정성, 노동과 수고, 타인의 고통까지 이해하고 존중하는 자세와 다를 바 없고, 이런 자세는 지상의 낮고 어두운 곳까지 내려갈 때만이 얻어지는 것일 테다.

시인의 말마따나 기름진 배에서 맑은 시를 얻는 것은 어불성설에 가깝다. 시인의 술상은 막걸리 한 병과 배추전 한 장이면 족할 텐데 비싼 안주와 꾸미는 말로 정신을 흐리지나 않는지 종종 돌아볼 일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