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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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석주, 『내가 읽은 책이 곧 나의 우주다』, 샘터, 2015.
독서광으로 알려진 장석주 시인의 독서 이야기다. 여는 글에서, “인생은 책을 얼마나 읽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이토 다카시의 말과 “책을 사는 것은 책을 읽을 시간도 함께 사는 것이다”란 누군가(?)의 말을 인용하며 책을 사서 읽을 것을 거듭 주문한다.
<나는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게 실제로 뇌 구조 자체가 변하거든요. 우리의 뇌 구조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느냐에 따라 그 형태가 변합니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들어본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사실입니다. >
시인은 그 근거로 런던 택시 운전기사와 런던 일반인들의 뇌구조를 자기공명영상으로 비교했던 사례를 인용한다. 이 두 부류의 사람이 공간 탐지와 관련되는 기억 관리 부분인 해마가 서로 달랐다고 하니, 책 읽은 사람의 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뇌도 다르지 않겠냐는 생각이다.
시인은 십 대에서 이십 대에 이르는 청년들이 읽어 보았으면 하는 책 다섯 권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 박지원의 『열하일기』,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 막스 피카르트의 『침묵의 세계』를 꼽는다. 방황하던 젊은 날, 자신의 마음에 품었던 질문에 답을 던져준 작품들이란다. 그 시절 시인이 닮고 싶었다는 한 명의 작가는 알베르 카뮈다. 『이방인』은 나에게도 영향을 준 소설이지만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시 읽을 마음을 내지는 않을 텐데, 시인은 이런 나를 이해하듯 기억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고 읽으라고 조언하고, 또한 이런 내가 안타깝다는 듯이 중요한 작품은 세 번은 읽으라고 충고한다.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가스통 바슐라르의 『초의 불꽃』, 노자의 『도덕경』도 시인이 강하게 미는 작품이다. 이중에 하나 정도는 읽어 주어야 할 텐데 하는 부담이 생긴다. 이런 부담이 독서의 동기가 되는 거라면 부담이 아주 없는 쪽이 오히려 문제이긴 하다. 다만, 아래 문장을 만났을 땐 시인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 섭섭지 않다.
<나는 책 읽을 때 줄을 긋거나 메모를 하지도 않습니다. 줄이 그어져 있고 어딘가에 표시가 되어 있으면 다시 읽을 때 거기에 시선이 꽂혀서 다른 부분을 못 보기 때문이에요. 그 책에 전에 읽었을 때 보지 못했던 다른 중요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내 책들은 늘 새것처럼 깨끗합니다.>
책 사용에 대한 작가의 말이 그럴싸하고 깨끗한 책은 장서 관리나 다른 사람이 책을 물려받을 때도 장점이 있다. 하지만 책에 밑줄을 긋고 생각의 단상을 메모해두면 나중에 책을 폈을 때 환기되는 정보가 빠르고 많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독서인도 어지간히 있다. 다만, 자신이 산 책에 그러면 될 것을 도서관 책에 흔적을 남기는 건 지나쳐 보인다.
책에 흔적을 남기지 않는 부류와 책에 줄을 쳐 가며 흔적을 남겨야 하는 부류 중에 나는 두 부류의 좋은 점만 누리는 독서법을 갖고 있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 다음에 한 번 더 보고 싶은 구절을 만나면 얇은 포스트잇 한 장 처방하면 만고땡이다. 책도 상하지 않고 깔끔하니 좋지 않은가. 그런데 이것도 버릇이라고 포스트잇이 눈에 띄지 않으면 독서가 안 되는 약간의 단점은 있다.
장석주 시인은 ‘대추 한 알’의 시로 유명세를 치르고 있지만 근래 시를 읽지 않는 분위기에 대해 몹시 안타까워한다. 시를 읽어야 하는 이유를 메모해둔다.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시는 인간 의식 활동의 정수입니다. 사람들이 단단하고 멋진 몸을 만들겠다고 헬스클럽에 가는 것처럼 평소 뇌도 단련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뇌도 유산소 운동과 근력강화 운동을 해야 하는 거지요. 그래서 시를 읽으면 뭐가 좋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얘기하고 싶어요. ‘시 읽기는 뇌의 유산소 운동이다’. 시를 많이 읽으면 정말로 뇌가 유연해지고 강해집니다. >
끝으로, “책이 좋은 것은 누구도 차별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라고 했던 시인의 육성을 좋게 듣는다. 시인은 프리미어리그 축구 경기도 즐겨 챙겨보고 글도 쓴 적이 있다고 한다. 근래 손흥민 선수 경기를 유료화해서 돈 내고 볼 건가, 말 건가 며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이런 차별은 괜찮은지 하늘에 묻고 싶은 마음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