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城) / 구자운
성(城) / 구자운
우리들은 줄곧 성을 찾아왔다.
우리들의 성은 허지만 큰거리에서 별로 멀진 않다.
그것은 숯검정 낀 부엌의 기름내 자오록한
텅 빈 걸상이 널리운, 뒷골목의 목로 술집이니까.
우리들은 어느 때보다 일찌감치 안방을 차지하였다.
이렇듯 먼지 이는 날씨엔 목구멍이 컬컬해진다.
우리들은 술을 기울여 다시금 탄약에 불을 붙였다.
종이 바른 벽을 뚫고서 포탄이 뛰쳐나갔다.
거리는 조용하여 참새 새끼 한 마리도 없다.
오후의 햇살에 눈 녹은 고드름이 빛나고 있다.
우리들의 악당은 사뭇 여러 방향에서 솟아나온다.
그것은 우리들의 탄환으로 하나하나 거꾸러진다.
어떤 악당은 한창 용감히 덤벼든다.
아주 권력이 있는 것인 양, 하지만 술에 빠져
떠내려가는 것이 이런 치들이다.
어떤 악당은 좀 경망한 주제에 넘보기 어려운 재주가 있다.
「탐욕」 「억지」 「교사」 「철면피」
갖가지 악당들이 몰려서 밀고 온다.
「경험」이랑 「숙련」이랑 부리는 술책이 능하다.
그렇지만 우리들에겐 하찮은 표적이다.
우리들은 늘 술로 무장하고 있다.
술이란 놈은 죽지 않는 영웅이란 말이야,
이것은 또 얼마나 요긴한 마술일러냐
우리들은 탄약을 다 써버리고 둘쨋번 성을 향하여 발길을 옮긴다.
<신사조> 1962. 2. / 구자운 시전집 『벌거숭이 바다』, 1976, 창비.
감상 : 구자운 시인은 1926년 부산 부용동에서 태어나 1972년 서울 면목동 집에서 위암으로 죽었다. 명동을 누볐던 동갑의 박인환 시인은 1956년 불과 서른한 살의 나이로 요절한다. 당시 구자운은 시 추천을 받아서 데뷔를 앞두고 있었다. 명동의 대한광업회란 직장에 다니던 구자운은 시인들에게 술 잘 사주는 사람으로 통했다. 저녁이면 술집을 다니다가 귀가를 놓친 시인들을 식구가 있는 그의 가정까지 데려와서 숙식을 제공하곤 했다. 문인들의 그 술 분위기가 좋아서였는지 직장 일의 스트레스 때문인지 구자운은 다니던 직장을 일찍 그만두고 러시아 문학 번역 일이나 신문사 일을 전전하게 된다.
위 시가 1962년 2월 발표된 것을 감안하면, 시인이 고향인 부산의 <국제신문>에 취업이 되어 서울에서 내려가기 직전 상황이다. 그런즉 「성(城)」에는 그 무렵 시인의 서울 생활이 활동사진처럼 담겨 있다. 시인 일행이 줄곧 찾았다는 성의 정체는 뒷골목의 허름한 술집들이다. 목구멍에 술을 대는 건 재워진 탄약에 불을 붙이는 일이라고 시인은 비유한다. 불에 덴 화약은 터지고, 격발된 탄환은 악당을 거꾸러뜨린다.
거꾸러뜨려야 할 악당이나 타깃은 주점 바깥의 몹쓸 권력자들이다. 자리나 백을 믿고 안하무인격으로 행세하는 자는 공공의 적이다. 뿐만 아니라 탐욕의 악당, 억지의 악당, 남 부리는 악당, 잘못하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크고 작은 악당들이 불려 와서 술잔이 돌 때마다 벌을 선다. 술을 핑계해서 역전하는 인생이니, 술은 “죽지 않는 영웅”이요 “요긴한 마술”이라고 할 만하다.
꼭 그렇진 않더라도 마음 맞는 사람끼리의 술자리는 얼마나 정다운가. 다만, 성주든 주민이든 한 번의 성(城)에 만족하면 좋을 것을, 두 번째 세 번째 성으로 이동하면서 술이 영웅을 나락으로 밀고 아무도 원하지 않는 마술을 보여줄 때가 생긴다. 자칫 균형을 잃고 평정을 놓칠 것 같으면, 포탄이 방향을 잃고 엉뚱한 데서 터지기도 한다. 이유 불문, 시비 불문, 이해 불가의 유탄이 돌고 유탄에 맞아 쓰러지는 일도 없지 않다.
구자운 시인의 개인사를 다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술이 그에게 벗과 예술과 충만한 에너지를 준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앗아가는 빌미를 제공한 것으로도 보인다. 울보 박용래 시인은 구자운 시인의 죽음을 슬퍼하며, 「반 잔」이란 시를 남겼다.
“(전략) 오가는 발자국 그 옛자리,
설레는 눈발 그 옛자리,
오늘은 널 위해 슬픈 잔을
던지누나.
(반 잔만 비운 나머지……)
쨍그렁 울리는 저승바닥.“
반 잔을 구자운 시인에게 양보한 박용래 시인이 천당에 갔다면, 반 잔을 이자 쳐서 받았을 성싶다. 이쪽이든 그쪽이든 술자리는 1차에 파하는 문화가 정착되면 좋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