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두어 편의 시로 읽어 보는 이상(李箱) / 이동훈

톰소여와허크 2022. 10. 8. 00:31

두어 편의 시로 읽어 보는 이상(李箱) / 이동훈
서울 종로구 통인 시장 옆 ‘이상의 집’은 이상(김해경)의 큰아버지댁이다. 세 살 때 자식이 없던 큰아버지 댁에 양자로 보내진 이상(1910-1937)은 보성고보와 경성고등공업학교 졸업 후 총독부 건축과에 취직한다. 화가의 꿈이 있었지만 돈을 벌어야 했다. 출중한 그림 실력은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입선 기록으로 증명되고, 1934년 친구인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의 신문 삽화를 맡아 그릴 정도였으나 생계보다 시급한 것은 아니었다.
이상은 자신을 돌봐준 양부와 그쪽의 남동생, 가난한 친부의 가계와 두 동생까지 돌봐야 할 의무로 힘겨워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시는 「가정」이다. 시에서 화자는 집으로 좀처럼 들어가지 못한다.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란다. 가장으로서 압박감이 커질수록 신체는 점점 왜소해진다. 그런 중에, “우리집이앓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수명(壽命)을헐어서전당잡히나보다. 나는그냥문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어달렸다. 문을열려고안열리는문을열려고.”(《가톨릭청년》,1936.2)로 이어지는 언술은 비유가 아니라 그냥 사실 같다. 이상은 생계를 위해 ‘제비’, ‘쓰루’, ‘69’, ‘무기’로 장소와 간판을 바꾸어가며 다방 개업과 폐업을 반복했다. 그 과정에 빚을 내고 보증으로 집이 잡히고 그 집이 위태로운 정황이 그림처럼 그려지는 시편이다. 이상이 가게 일에 게을렀다는 박태원의 증언이 있지만, 주어진 수명까지 까먹으면서 문고리에 매달린 가장의 아픔을 이토록 절실하게 표현한 시구는 흔치 않을 것이다.
「가정」 외에도 「육친」이란 시에서도 가정과 가족에 대한 부양 책임을 이상이 얼마큼 크게 느끼고 있었는가를 살펴볼 수 있다.
크리스트에혹사(酷似)한남루한사나이가있으니이이는그의종생과운명까지도내게떠맡기려는사나운마음씨다. 내시시각각에늘어서서한시대나눌변(訥辯)인트집으로나를위협한다. 은애(恩愛)―나의착실한경영(經營)이늘새파랗게질린다. 나는이육중한크리스트이별신(別身)을암살하지않고는내문벌과내음모를약탈당할까참걱정이다. 그러나내신선한도망이그끈적끈적한청각을벗어버릴수가없다.
- 이상, 「육친」 (〈조선일보〉, 1936.10.9)
예수 그리스도와 거의 흡사한 남루한 사나이의 정체는 뭘까. 『이상 전집』(권영민)의 시각은 ‘나’의 아버지로 주석을 달며 예수와 아버지를 동일시한다. 시에서 ‘사나이’는 화자인 ‘나’와 구별되어 있으니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류를 위한 희생자 예수와 가정을 위한 희생자 아버지 사이에 포용하는 범위에 차이가 있을지언정 스스로 짐 진 삶의 무게는 다르지 않다는 것이니 이런 해석에 무리가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사나이’를 예수의 별신(다른 몸)으로 보았듯이 ‘사나이’를 ‘나’의 다른 몸 혹은 내부의 또 다른 자아로 읽어도 충분히 좋을 것이다. 주체가 ‘나’인 「가정」의 연장선상으로 읽히는 데다 사나이 즉 아버지를 암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분도 이해가 자연스러워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볼모로 잡혀 있는 가장 의식을 버리지 않고는 문벌과 음모로 상징되는 자신의 역사나 계획을 밀고나갈 수조차 없을 것이란 인식이 깔려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상의 얼굴은 구본웅의 〈친구의 초상〉(1935)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물고 있는 담배 파이프를 빼면 창백한 얼굴과 거뭇한 수염의 신산스러운 사내 얼굴이 남는다. 동경의 골방에서 이상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김기림은 수척해진 그의 얼굴에서 예수를 떠올리며 “현대라는 커다란 모함에 빠져서 십자가를 걸머지고 간 골고다의 시인”(‘故 이상의 추억’(《조광》,1937.6)을 대하는 듯한 인상을 받기도 한다.
예수는 이웃에 대한 은애(恩愛-은혜와 사랑)를 헌신적으로 실천한 성인이지만 평범한 ‘나’는 흉내 내는 것도 버겁다. 가장으로서 가족 경영에도 늘 새파랗게 질리는 마음이 되니 결국, 일신의 자유를 위해서 도망을 꾀하지만 또 다른 목소리가 ‘나’를 잡는다. 혈연과 의무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언일 것이다.
이는 이상이 여동생에게 보낸 공개편지에도 확인되는 부분이다. 여동생이 남자친구와 가출을 감행하자, ‘동생 옥희 보아라’(《중앙》,1936.9)를 통해서 철없는 동생의 행동을 나무라면서도 동생의 미래를 응원해주는 내용이다. 편지엔 동생의 결행에 일말의 부러움을 느끼며, 자신도 한 번은 밖으로 나갈 것을 생각하면서도 “네가 나갔고, 작은 오빠도 나가고, 또 내가 나가버린다면 늙으신 부모는 누가 지키느냐고? 염려마라. 그것은 맏이인 내 일이니 내가 어떻게라도 하마.”라며 복잡한 심사를 드러낸다. 이상에게 그 한 번은 일본 동경으로 떠나는 것으로 실현된다. 물론 그 한 번의 기회마저 이상의 자아실현을 돕지 못했고 생활을 타개하지도 못했다. 그러기엔 몸이 너무 망가져 있었다.
이상이 정지용의 주선으로 1933년 《가톨릭청년》에 국문 시로 처음 발표했다는 세 편의 시는 「꽃나무」, 「이런詩」, 「1933,6,1」 이다. 특히, 이상의 「이런詩」에서 시인의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암시하는 이런 삶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읽어 보게 된다.
역사를 하노라고 땅을 파다가 커다란 돌을 하나 끄집어내어 놓고 보니 도무지 어디서인가 본 듯한 생각이 들게 모양이 생겼는데 목도들이 그것을 메고 나가더니 어디다 갖다 버리고 온 모양이길래 쫓아나가 보니 위험하기 짝이 벗는 큰길가더라.
그날 밤에 한 소나기 하였으나 필시 그 돌이 깨끗이 씻겼을 터인데 그 이튿날 가보니까 변괴로다 간데온데없더라. 어떤 돌이 와서 그 돌을 업어갔을까 나는 참 이런 처량한 생각에서 아래와 같은 작문을 지었도다.
‘내가 그다지 사랑하던 그대여 내 한평생에 차마 그대를 잊을 수 없소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은 알면서도 나 혼자는 꾸준히 생각하리다. 내내 어여쁘소서.’
어떤 돌이 내 얼굴을 물끄러미 치어다보는 것만 같아서 이런 시는 그만 찢어버리고 싶더라.
- 이상, 「이런詩」 (《가톨릭청년》,1933.7)
자꾸 마음이 가는 돌 하나가 있었는데 인부가 내다버리고, 그곳에 다시 갔더니 누가 주워 가고 없더란 얘기다. 자신은 어떤 미련이 남았는지 그 사실을 계속 떠올리며 이 사실을 작문으로 남겨둔다는 게 자신의 사랑이 그러하다는 식으로 에둘러 적고 있다.
1933년이면 이상이 폐병이 악화되어 건축직 일을 그만두고 황해도 배천으로 요양을 떠났다가 그쪽 요정에서 금홍이를 만난 해이다. 금홍이와 이상은 사랑에 빠진다. 이때와 이후의 사연은 이상을 불멸의 소설가로 그리게 될 「날개」(《조광》,1936.9)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지만 수필 같은 소설 「봉별기」(《여성》1936.12)에서 근간의 사정이 더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나’는 돈이 매개되지 않고도 금홍이와 연인 관계가 되었지만 금홍이를 자유롭게 둔다. 오히려 알고 지내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고 화대를 받게 한다. 이러한 일은 서로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양을 끝내고 서울로 돌아온 ‘나’를 금홍이가 찾아오고 둘은 부부처럼 지낸다. ‘나’는 금홍이의 과거를 묻지 않고 일 년여 이상 행복하게 지내지만 금홍이에게 예전의 버릇이 돌아온 게 문제가 된다. ‘나’는 예전과 다르게 정조 관념을 생각하고 금홍이는 예전과 다르게 다른 남자를 만난 일을 숨긴다. 그러면서도 금홍이의 사업을 위해 자기 방을 내어주며 외출하기도 했던 ‘나’는 금홍이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다. 금홍이는 때 묻은 버선을 벗어놓고 집을 나간다. 두 달 후 돌아온 금홍이에게 ‘나’가 이별을 말하지만 중병이 걸려서는 금홍이를 부른다. 금홍이는 재차 떠나고 스스로 돌아온다. 둘이 마지막으로 영이별이란 결론을 내릴 무렵 금홍이는 “속아도 꿈결 속여도 꿈결”하는 구슬픈 창가를 한다. 이러한 내용을 감안하면, 뒤에 발표된 「봉별기」가 오히려 「날개」의 밑바탕이 되었을 거라는 추리가 가능하다.
다시 「이런詩」로 돌아가면, 이상이 금홍이와의 연애 감정을 갖고 있을 때의 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봉별기」엔 큰아버지의 첫 번째 기일을 맞아 ‘나’가 귀경을 앞둔 날, “정거장에서 나는 금홍이에게 십 원 지폐 한 장을 쥐어주었다. 금홍이는 이것으로 전당잡힌 시계를 찾겠다고 그러면서 울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이상은 앞뒤 설명을 붙이지 않았지만, 가난한 ‘나’가 어떻게든 금홍이를 위해 자신의 시계를 전당잡혀가면서까지 십 원 지폐를 만들었고, 그걸 눈치 챈 금홍이는 거꾸로 그 돈을 쓰지 않고 다시 시계를 찾아서 돌려주겠다고 얘기하는 장면으로 읽힌다. 통속적인 정조 관념을 벗어나서 보면 정말 때 묻지 않은 사랑이다.
그럼 돌에 빗댄 사연은 어떤가. ‘나’는 돌을 가까이에 두고 지낼 몇 번의 기회가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인부들이 돌을 들고 나갈 때도 말리지 않았다. 큰길에 버린 것을 두고 들여오지도 않았다. 자신과 인연이 닿아있다고, 자신이 돌을 책임질 것이라는 입장을 공공연히 밝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고 싶은 마음과 그럴 수 없는 조건 사이에 내면의 동요가 있었던 것인데 결국, 그사이에 돌은 사라졌으니 아마도 다른 누군가의 차지가 될 공산이 크다. 돌연, 시인은 돌의 정체를 비밀리에 두는 것도 답답했는지 갑작스레 사랑의 태도를 말한다. 돌이 곧 “사랑하던 그대”라고 일러주는 셈이다. 그 무렵, 스물세 살 이상 시인의 ‘그대’는 스물한 살 금홍이일 것이다.
그런즉 「이런詩」는 젊은 시인의 사랑과 고뇌를 ‘나’의 독백으로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금홍이를 사랑하지만 이 사랑은 자신에게든 남에게든 전적인 수용이 안 되는 사랑이다. “내 차례에 못 올 사랑”인 줄 깨친다는 그럴싸한 구실을 내세웠지만 미덥지 않고 오히려 자기변명에 가깝다. 다른 누구보다도 이상 스스로 이를 알아차린다. 그대의 미래를 빌어주고 사랑으로부터 짐짓 물러서 있는 자신의 낯짝을 의식하며 그만 이런 시를 찢어버리고 싶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이런 생, 이런 위선을 찢고 싶다는 데까지 나아간 시인의 정신을 높이 사지만 고민은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당대 화류계 여성에 대한 주변 인식을 고려하면, 이상이 봉건 윤리에 갇히지 않고 한참 앞서간 인물이라고 하더라도 금홍이와의 사랑을 결혼이라는 제도로 이어가는 건 부담스러웠을 게 분명하다. 또 하나, 자유분방한 연애를 하며 어떤 면에선 남자에게 전혀 꿀리지 않는 금홍이의 개성을 사랑이란 이름만으로 오래 잡아둘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부지불식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詩」 이후, 이상은 금홍과의 동거 생활에 들어갔고 남편과 아내 노릇을 했으나 정작 문제는 경제적 문제로 불거진다. 「봉별기」에선 예전 생활에 대한 금홍이의 향수를 문제 삼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나태한 생활이 빌미를 주었을 걸로 헤아린다. 「날개」(《조광》1936.9)에서 보여준, 밤낮으로 잠만 자고 게으르고 경제적으로 무능력한 바깥사람의 이미지가 겹친다. 통인동 큰아버지 집을 팔아서 차린 ‘제비’ 다방의 마담으로 금홍이가 들어앉았지만 이재와 상술엔 밝지 못했나 보다. 이상이 얼마간의 수익을 큰아버지 댁과 빈민촌에 사는 부모형제에게 알뜰히 보냄으로써 살림은 더욱 빠듯해졌으니 자신에게 적잖은 돈을 쓰고 싶어하는 금홍이와의 갈등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이상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게 하고, 돌아온 사람을 다시 떠나게 한다. 아니면 그런 사랑을 조소하며 자신이 떠나기도 한다. 금홍이 이후의 권순희와의 만남도 그런 면이 있고, 그 이후의 변동림(후에 김환기를 만나면서 김향안으로 개명)을 만나서도 마찬가지다. 「종생기」(《조광》1937.5)의 정희라는 여자와의 관계도 그렇다. 결별이 예정된 아슬아슬한 사랑 뒤엔 가난한 가계와 그걸 의식하는 이상 본인의 내면 심리가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란 게 이번 글의 요지가 될 것이지만 이 또한 명료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할 순 있지 않을까. 가장으로서 책임을 다하려는 마음이 크면 클수록 애를 써도 면치 못하는 가난이 더욱 절망스러웠을 것이라고. 사회적 평판은 둘째 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의 비난과 동정을 받게 되면서 자조적인 제스처가 빈번해지고 자의식만 더욱 예리해졌을 거라고. 가난한 가계에서 폐를 앓아가면서 고통스레 건져 올린 시, 소설, 수필만은 가장 비생산적인 생활에서 가장 생산적인 작품을 쏟아낸 기막힌 아이러니라고. 끝으로, 「이런詩」와 함께 발표된 「꽃나무」의 한 구절을 옮겨 적으며, 꽃나무의 안녕과 꽃나무를 생각하는 꽃나무의 안녕을 빈다.
“꽃나무는제가생각하는꽃나무에게갈수없소 나는막달아났소 한꽃나무를위하야 그러는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