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계희영,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 김소월의 생애』, 문학세계사, 1982.
- 『약산 진달래는 우련 붉어라 : 김소월의 생애』는 『내가 기른 소월』(장문각, 1969)을 재출간한 책이다. 계희영은 소월의 숙모다. 소월의 큰숙부에게 시집온 것은 소월이 4살 때인 1905년 가을이었고, 소월이 잠깐의 서울 생활과 일본 유학에서 돌아와서 처가인 구성군으로 살림을 나간 것은 1926년의 일이었다. 그 기간에 계희영은 누구보다도 소월을 가까이 지켜본 인물이니 이 책은 소월의 개인사에 대해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인 셈이다.
소월의 고향은 평안북도 정주군 곽산면 남산리다. “말 마소 내 집도 / 정주 곽산 / 차 가고 배 가는 곳이라오”(「고향」)라고 노래한 바 있다. 실제 태어나기는 1902년, 외가인 구성군 서산면 왕인리에서 태어난다. 1903년, 소월의 아버지는 신행 다녀오는 길에 일본인 인부에게 폭행을 당하고 뇌를 다쳐 정신병자가 되고 만다. 소월 가계에 깊은 그늘을 드리는 사건이다. 할아버지가 소월을 아꼈지만 광산 일에 빠져 집을 나가 있을 때가 많았다. 가산을 탕진하는 중에 마지막에 한 건을 터뜨려 상당 부분을 만회했다고 하니 소월은 가난을 모르고 자란 편이다.
계희영이 집에 들어온 후로 소월은 계희영을 새엄마로 부르며 밤낮없이 이야기를 조르기 시작한다. 한글을 배워 고전소설을 여러 권 읽은 계희영은 이야기를 곧잘 했고, 베 짜기를 잘하는 소월의 어머니는 그 덕에 일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다 자다 깨면 님의 노래는 / 하나도 남김없이 잃어버려요 / 들으면 듣는 대로 님의 노래는 / 하나도 남김없이 잊고 말아요”(「님의 노래」)는 소월이 자신에게 옛 이야기를 듣는 장면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계희영은 생각한다. 소월은 이야기를 ‘잃어버려요’라고 적었지만 실제로는 머리가 비상해서 ‘외워버려요’로 들으면 된단다. 「접동새」도 자신이 들려준 이야기다. “나의 옛이야기가 소월에게 그토록 영향을 미칠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이 오늘에 와서 크게 후회된다”고도 했다.
책의 몇몇 장면이나 의문점을 메모해 둔다.
1. 소월은 이야기를 졸라 대며 그래서? 응, 하며 깐깐하게 굴며 거듭 묻는 스타일이라서 소월은 ‘깐깐이 아제비’란 별명을 갖고 있었다. 아제비는 아저씨의 방언이다.
2. 소월의 맏고모부 김시점과 소월의 스승인 김억에 대한 이야기다. 김시점은 기독교인이며 민족주의자로서 105인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의 요시찰 대상이 된 인물이며 망명 도중 일경에 잡혀서 정주 형무소에 1년간 옥살이를 치렀다고 한다.
“김억은 남산리 서쪽 과르산이란 곳에서 출생했는데 그 고장은 일찍이 소월의 조부의 고모께서 김억 선생의 작은할아버지의 아내로 출가갔던 곳으로서 소월과는 사돈이며 먼 친척간이 된다. 과르산 고모할머니는 소월이 어렸을 때 자주 내왕하셨기 때문에 가까운 친척으로 지냈다. 김억은 소월보다 구년장이고 소월은 그를 선생님으로 모셨으나 직접 사사한 일은 없으며, 오직 존경하는 분이기에 스승으로 삼았었다”고 했다. 살아서 『진달래꽃』, 또 죽어서 『소월 시초』를 내준 김억인데 계희영은 소월이 김억을 사사한 일이 없었다고 굳이 적어놓았다. 시 일부가 김억과 겹치는 논란, 소월의 사생활에 대한 김억의 진술 등을 의식해서 얼마간 거리를 두고 싶어 하는 심리가 깔려 있었을 성싶다.
3. 소월이 다닌 남산학교와 오산중학교 이야기다. 남산학교는 애국자의 강연 장소로 자주 활용되었으며 “겨울에는 해마다 뒷산에서 능한산까지 토끼 사냥 가는 행사가 있었다. 선생님들은 포수가 되고 학생들은 몰이꾼이 되어 백설이 강산 같은 추운 겨울에도 모두 가벼운 행장으로 산에 올랐다”고 하니 토끼 사냥이 남산학교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인 셈이다.
오산중에 곽산골 출신은 많았지만 당시 남산리 출신은 소월이 유일했단다. 오산중에 다니면서 집을 떠났던 소월이 방학 때 집에 들르면 남산학교 시절과 다르게 우울해하고 고독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배경에 정신병자 취급받는 아버지가 있는 걸로 계희영은 이해한다. 이 과정에 “덕 없는 나를 미워하시고 / 재주 있는 나를 사랑하셨다”(「제이 엠 에스」)의 ‘덕’을 ‘아버지’로 간주하는데 이는 무리한 연결 같기는 하다. 시 제목의 주인공인 조만식 선생이 공부나 글쓰기 면에선 탁월하면서도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소월의 기질에 대해서 진심어린 충고를 했을 법하다. 남 보기에 덕(德)이 부족한 성정이 있었다고 고백하는 건 흠이라기보다는 자아성찰에 가까워 보인다. 다만, 아버지에 대한 이러저러한 소문이 사춘기 소년의 성격에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소월은 이제 고향마을에서도 외롭다. 하나밖에 없던 친구, 상섭이가 장가간 후 연락이 뜸해진 것이다. 할아버지가 심었던 배나무에 올라가서 혼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계희영은 그런 모습을 안타깝게 쳐다본다. 이후로도, 언제 어디서나 책 한 권 들고 다니는 건 계희영의 눈에 비친 소월의 변함없는 모습이다. 고향 친구 상섭의 이른 죽음 이후, 소월은 절통한 마음을 담아 「초혼」을 쓴다.
4. “오오, 아내여, 나의 사랑! / 하늘이 맺어 준 짝이라고 / 믿고 삶이 마땅치 아니한가. / 아직 다시 그러랴, 안 그러랴?”(「부부」)에서 노래했듯이 소월은 아내를 평생 존중했다. 계희영은 신여성을 만나 아내를 버리는 풍조를 소월은 전혀 따르지 않았으며 소월을 둘러싼 염문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한다. 소월의 외숙(자신의 남동생)인 경삼이 신의주 모 고등학교의 교사가 되어 그동안 자신을 뒷바라지한 7년 연상의 아내를 버리고 새로 살림을 차린 일이 있었다. 경삼은 본부인을 버리고 일 년 후에 죽고, 비보를 들은 아내는 원망도 잊고 슬픔에 잠긴다. 이런 정서가 소월의 「진달래꽃」의 배경이 된 걸로 계희영은 여기는 듯하다.
5. 소월은 한복을 입고 짚신을 즐겨 신는 등 검소하게 지냈다. 아버지의 비극도 나라 없는 처지에서 기인한 걸로 말하며 소월은 나라 찾는 데 힘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다. 한동안 계희영의 방에서 동네 아이들을 모아서 공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동경대지진 후 일시 귀국했다가 할아버지와 어머니의 반대로 일본 유학을 포기해야 했을 때, 소월의 실망감은 컸다. “소월이에게 마지막이자 유일의 낙과 희망이었던 유학길마저 막혀 버리니 이때부터 소월은 비감의 사람으로 완전 전락되었고 조롱 속의 새, 아니면 날개 잘린 새매 같다는 신세타령으로 소일하게 되었으며 영원한 한은 이 때부터 싹트기 시작했다”고 했다. 얼핏 일본에 대한 이중적인 자세가 감지된다. 참회록을 쓰면서 일본 유학을 떠났던 윤동주가 겹쳐 보이기도 한다. 소월에게 일본이란 나라가 어떻게 인식되어 있는 걸까. 불투명한 시대, 소월 본인도 명쾌한 답을 갖고 있지 못한 채 고민에 고민을 더하며 길을 모색하다가 통로를 찾지 못한 것은 아닐까.
6. 계희영도 평양으로 이사를 나가면서 소월이 구성에서 보낸 9년여의 세월은 계희영도 잘 알지 못한다. 계희영의 맏딸 결혼으로 1930년 곽산 큰집에서 해후했을 때 소월은 계희영에게 구성에서의 삶도 일본 순사의 감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소망 없이 죽는 길밖에 없다는 속내를 드러낸다. 순사에게 술꾼으로 보이기 위해서 술만 마신다는 얘기, 동무가 없어서 아내에게 술을 가르쳐 마신다는 얘기를 듣는다.
1934년 12월, 시장에서 아편을 사온 소월은 아내 입에다 얼마쯤 넣고 자신도 복용한다. 소월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편 과다 복용이고, 스스로 그러했으니 자살이다. 이는 계희영이 소월의 아내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이지만 자신도 확신할 수 없다고 했다. 평론가 김윤식은 김억이 언급한 저다병이 뭔지 추적해서 소월의 사인이 신체 마비를 동반한 각기병일 가능성에 대해서 말한 바도 있다.
계희영의 글과 함께 소월에 대한 기록으로, 『소월 시초』(1939)에 실린 김억의 글 ‘김소월의 행장’과 ‘김소월의 추억’이 있고, 『김소월론』(엄호석, 1958)도 눈에 띈다. 북한 <문학신문>에 실렸다는 생가 탐방기 ‘소월의 고향을 찾아서’(김영희, 1966)도 인터넷상으로 확인된다. 소월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소월을 읽는다. 소월의 삶과 작품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시각차가 큰 편이다. 소월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긍정적 면도 없지 않지만 소월을 대하는 시각차가 어디에서 연유하는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근래 출간된, 『진달래꽃에 갇힌 김소월 구하기』(박일환, 2018)는 김소월의 작품을 다루면서 이런 부분을 꼼꼼하게 살피고 있어서 소월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