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그 아침에 만난 책
이기철, 『그 아침에 만난 책』, 양산시민신문, 2022.
- 책에 관한 책이다. 차례에 잡힌 책은 105편이지만 실제는 조금 더 된다. 몸이 아픈 중에도 부지런히 읽고 쓴 기록이다. 읽고 쓰는 일이 약이 되었는지 이기철 시인의 몸도 좋아졌다. 다른 묘약이나 처방이 있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책 선택 기준은 형식과 내용 면에서 특정 경향을 띠지 않지만 시인의 가슴에 한 번씩 울림을 주었던 책이다. 시인의 페북엔 매일매일 전국의 책방이나 온라인 서점에서 사냥해온 책 사진이 올라온다. 책은 쌓아두기만 해도 좋은 것이라고 하지만 시인은 수시로 허물고 새로 쌓는 신공을 지녔다. 책을 독파해낸 시간과 정성은 『그 아침에 만난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직 쌓여 있거나 나날이 쌓일 책을 위해서 점심, 저녁, 오밤중에 만난 책도 출간할 작정인 모양이다.
책 소개 중, 『서재 결혼시키기』(앤 퍼디먼)는 서재 통합을 둘러싼 부부 신경전이 나온다. 시인은 이 장에서 책 읽기와 사랑은 강요에 의해서 될 순 없음을 분명히 한다. 그렇다고 자발적 책 읽기가 절로 되는 건 아니다. 시인은 『지금 바다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을까』의 최영실 작가가 그랬듯이 독자가 스스로 길로 나서보기를 권한다. 시인은 “스스로 ‘글’이고 ‘길’이어야 한다”고 했는데 여기 ‘글’ 대신에 ‘책’을 넣어도 좋겠다. 글이 길이고 책이 길이다. 먼저 길을 걸은 작가가 주변에 도움을 줄 순 있어도 길을 가고 안 가고의 문제는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가고자 하는 길이 어떤 길이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도 책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작용할 것이기에 결국, 책이 책을 읽게 하는 것이다.
이기철 시인은 소설가 이태준의 말을 인용하여 좋은 수필은 ‘자기 풍부’와 ‘자기의 미’를 갖추어야 한다고 했다. 그런 작품 중에 『누비처네』(목성균)도 있다. ‘명태에 관한 추억’을 글로 풀어낸 솜씨를 두고, “작가가 남긴 빼어난 글발은 무디어지기는커녕 대장장이 손을 거쳐 벼려 낸 묵직하고 단단함이 살아있는 ‘조선낫’ 품성을 빼다 박았다”며 상찬을 아끼지 않는다. 몇 편의 시집 소개 중 내가 쓴 『몽실 탁구장』도 썩 좋게 평해 주었으나 그런 이유로 이 글을 쓰고 있는 건 아니다.
시인은 『나는 왜 불안한가』(주응식)에서 예술가나 철학자에게 드리운 불안에 대해서 얘기한다. “그들 삶은 오히려 불안으로 명성을 얻었고 새롭게 살게 했으며 죽음마저 의미 있게 호명됐다”고 했다.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에 대해서 더 궁금하다면 책에 물어보라고 친절하게 답해준다. 이 책을 이미 경험한 시인은 담백한 소통은 행복한 만남이라고 했다. 어쩜, 책을 읽고 쓰고, 쓰고 읽는 전 과정이 고독하면서도 즐거운 소통이란 생각이 든다.
이 밖에도 이기철 시인은 생태와 환경을 생각하는 책, 지역 책방과 지역 문인들의 아름다운 고투를 담은 책, 놓치면 손해일 게 분명한 사진집이나 그림책에 대한 소개도 알뜰하게 해놓았다. 표지화로 쓰인 임현주 화가의 <a book-reading goose>(2022)는 이기철 시인을 모델로 했는지 궁금하지만 끝까지 따질 문제는 아니다.
근래 봤던 영화 <북샵>(이자벨 코이젯트 감독, 2017)의 클로징 멘트는 “그 누구도 서점에서 외롭지 않다”는 것이다. 쌓아둔 책으로 문화공간 겸한 책방을 열고 책방지기를 꿈꾸는 시인에겐 외로울 틈이 한시도 없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