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고양이 봄 / 김윤삼

톰소여와허크 2023. 1. 30. 09:06

고양이 봄 / 김윤삼

 

고양이 울음소리에 살금살금

걷는 발걸음 장산곶매 깃털보다

얼마나 가벼운지 돌아서다 흠칫,

 

사뿐사뿐 홀로 퍼 올리고

언제 오나 언제 오나 하다가

찬 서리 밑에 깔린 산돌림에 화들짝 놀라

 

맵디매운 2월 매화

 

나뭇가지 위

발가벗은 채 홀로 핍니다

 

눅진눅진한 농성장 대오 빨랫줄

가는 빗방울 톡톡 튀자

고양이 봄도 톡톡 웃음을 뱉습니다

 

* 산돌림: 옮겨 다니면서 내리는 소나기.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 삶창, 2022.

 

 감상 매년 2월이면 남쪽으로부터 매화 소식이 전해진다. 매화 벙그는 장면은 아름다워도 그 과정은 지난하다. 봄 기척에 일찍 꽃망울을 틔우려던 매실나무가 혹한에 다시 얼어붙기 일쑤다. 그런 중에도 봄은 오고 있다. 소나기가 지나고 잠시 방심하는 사이, 고양이 발걸음처럼 사뿐사뿐 봄은 오고, 매화는 터진다.

고양이 봄에서 노동자 시인이 기다리는 봄은 단순한 계절의 한 시기는 물론 아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 장산곶매가 등장한 것도 낯설다. 시의 맥락과 상관없이, 20212월에 돌아가신 백기완 선생의 장산곶매 이야기도 떠올려진다. 소외된 노동의 편에 서서 힘을 보태려 했던 백기완 선생의 무덤은 노동 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의 곁에 마련되었다.

표제시 붉은색 옷을 입고 간다도 노동해방 글자 박힌 붉은 조끼를 입고 동료의 장례식장에 간다는 내용이다. 동료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열악한 근로 조건에 따른 산업재해이기도 하고, 사용자와 노동자,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노동 차별이기도 하고, 사정없이 날아온 한 통의 해고 통지서이기도 하다. 죽음과 차별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노동 운동, 그 대가로 돌아온 손해 배상과 가압류가 불러온 죽음이기도 할 것이다.

노동자가 마주한 이러한 현실에, “언제 오나 언제 오나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단순히 봄이라고 해도 어설프고 매화라고 해도 허랑하다. 그래도 봄과 매화는 얼마나 그리운가. 아직은 쌀쌀한 2월의 농성장에서 전태일 같은, 백기완 같은 장산곶매가 봄 길을 열어주길 기대하는 마음이 시인의 내면에 잠재되어 있을 것도 같다. 더 좋은 길이 있다면 노동 차별이 없는 평등한 세상을 다함께 꿈꾸면 될 것이다.

겨울이 길고 매섭다고 해도 고양이 봄은 그 무게를 지우고 올 것이다. 한결 가벼워진 세상에 아니, 그런 세상을 꿈꾸듯 매화는 천진하고 명랑하게 피어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