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계속 가보겠습니다
임은정, 『계속 가보겠습니다』, 메디치, 2022.
- 2012년 9월, 박형규 목사 대통령 긴급조치위반 등 과거사 재심 사건이 있었다. 박형규 목사는 1974년 민청학련의 배후로 몰려 15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10개월 만에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 바 있다. 과거사 재심 사건을 맡은 임은정 검사는 대통령긴급조치 1호, 4호가 헌법에 위반된 무효 법령이란 이유로 검사 논고문에서 무죄를 선고해줄 것을 재판부에 청한다. 이전에 무죄가 확실시 되는 사안에 대해선 재판관이 법과 원칙에 따라 처분해달라는 백지 구형이 관례였으나 임 검사는 이를 깨고 무죄 구형을 선택했다. 이 과정에 과거사를 반성하는 내용의 논고문은 상급자나 공안통 검사의 질책을 불러오고 빨갱이 검사라는 이름도 떠돌게 된다.
같은 해 12월, 임 검사는 윤길중 과거사 재심 사건을 또 맡는다. 1961년 진보당 간사였던 윤길중은 반공임시특별법 위반으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7년을 복역했다. 이 사건을 맡은 임 검사는 백지 구형을 원하는 공안부와 상관의 지시에 이의를 제기한다. 이어지는 업무 배제도 부당하다고 판단하고 재판에 참여해서 다시 무죄 구형을 한다. 임 검사에겐 정직 4개월의 징계가 뒤따른다.
두 사건은 임 검사의 삶을 바꾸어 놓는다. 도가니 사건에 이어 시민 사회의 지지를 얻게 되는 계기도 되었지만 검찰 내 적을 많이 만드는 출발점이기도 했을 것이다. 상명하복의 검사동일체 원리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건 처음부터 감수한 일이었으니 임 검사도 견딜 만 했을 것이다. 문제는 내부 게시판이나 언론 등에 임 검사가 맞닥뜨리거나 알고 있는 부당한 간섭, 성희롱, 부정행위 등 고질이 된 검찰 내부 문제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하면서부터다. 윗선의 압력이 커질수록 처음에 뜻을 같이하거나 옆에 있어주던 동료들이 침묵하거나 거리를 두게 되는 일은 임 검사로도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이런 사정과 그 이후의 이야기를 임 검사는 자신의 책 『계속 가보겠습니다』로 들려준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자신의 반대편 논리 중 진정성이 있어 보이는 내용을 골라 소개해주면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지 구형의 타당성을 주장하는 간부들을 싸잡아 법적 양심을 버린, 조직 수뇌부의 뜻을 받드는 영혼 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은, 그분들이 그간 엉뚱한 색안경을 끼고 부장님을 잘못된 색으로 바라보며 고초를 겪게 했다는 이유로 부장님 역시 또 다른 색안경을 끼고 그분들을 바라보시는 것과 마찬가지일 수도 있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습니다”는 과거사 재심 사건과 관련해서 후배 검사가 보내온 메일이다. 공연 음란죄를 범한 검사에 대한 징계가 약하다는 임 검사의 목소리엔, “균형을 잃은 형벌은 무자비한 폭력에 불과하다. 언론의 과잉 보도나 선배의 글은 제 눈에 폭력으로 보인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임 검사가 이러한 길을 걸어온 뿌리는 뭘까. 그 단서가 되는 구절은 임 검사가 생각하는 법의 정신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임 검사는 “인간에 대한 신뢰와 연민”을 법의 정신으로 이해하고 있다. “공판검사에게는 피해자의 고통과 절망, 우리 사회의 분노와 자책, 피고인에 대한 연민과 충고 등을 모두를 대신하여 법정에 말할 의무가 있다”는 입장을 자신의 철학으로 확고하게 갖고 있기에 다른 길, 예컨대 주위의 평판, 괜찮은 인간관계, 싸우지 않는 평화로 가려는 마음을 애써 다잡았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임 검사를 신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힘이나 권력에 기대지 않고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를 우선 생각하고 그런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게 귀하게 여겨지는 까닭이다.
하지만 어떤 사안에 대해서 한 쪽에만 정의가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임 검사는 법전 말고도 사람 공부와 고전을 통해서 양식을 쌓고 자신이 진실 편에 있기를 생각한다. “군주가 나라를 잘 이끌면 그 명을 따르고, 군주가 잘 이끌지 못하면 그 명을 따르지 아니하여 군주가 백성에게 허물을 저지르지 않도록 함으로써 명재상이 되었다”는 제나라 안영의 말을 인용한 임 검사는 이렇게 하기 위해선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말하기도 한다. 임 검사의 소망대로 검찰에 대한 슬픈 노래가 언젠가 희망의 노래로 돌아오기를 같이 꿈꾸게 된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