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우산들 / 박지우

톰소여와허크 2023. 5. 7. 20:59

우산들 / 박지우

 

비는 모든 존재의 키를 키운다지

어쩌면 인간의 내면으로 파고들기 위해 내리는지도 몰라

 

꽃을 탐하는 비의 건널목으로

산란하는

우산 하나,

그리고 우산 셋

 

물비린내 날리는 여자가 위태롭게 걸어간다 화려하게 치장한 나비처럼 알록달록 동그랗고 투명한 얼굴들 목줄 풀린 개가 미끄러지듯 달려간다 울퉁불퉁 휘청거리는 비, 당신을 잃어버리겠어요

 

, , 나비를 꿈꾸는 노랗고 빨간 지느러미

 

비의 몸뚱이들

 

후드득 후드득

 

앞다투어 뛰어내리는

오독의 문자들

 

백색소음에 출근길이 저만치 달아난다

 

- 우산들, 한국문연, 2022.

 

 

감상 박지우 시인의 고향은 옥천이고 현재 부천에 거주한다. 옥천은 정지용 시인의 고향이다. 정지용은 부천 소사동에서 이삼 년 거주한 기록이 있어 시인은 더욱 친밀감을 느꼈겠다.

시인의 기억 속 옥천은 이원떡집과 지탄약국을 지나 절골 골목이 어른거리고 차창에 피어나는 작은숙모의 눈으로 봄의 색이 와락 달려”( 옥천 가는 길)드는 곳이다. 또한 정지용을 떠올리며 시인은 지용의 길로 비가 내리네/ ‘웃절 중이 여섯 판에 여섯 번 지고 웃고 올라간비탈에서 내 안의 색을 털어내네”(지용의 안경은 무채색)라고 썼다. 웃절 중 이야기는 정지용의 장수산 1을 인용한 것인데, 시인은 웃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중의 마음을 높이 사며 자신의 마음에 위로를 얻는 듯한 인상을 준다.

박지우 시인의 두 번째 시집, 표제시인 우산들을 읽어 본다. 비가 내리는 날, 꽃을 탐하여 우산들이 건널목을 건넌다. 화자는 그걸 지켜보는 시선을 갖고 있지만 나비 대신 , 가 되어 비에 공명하는 모습도 비치어준다.

건널목엔 위태롭게 걸어가는 여자, 목줄 풀린 개도 있지만 더 이상의 정보는 주어지지 않는다. 휘청거리는 주체가 여자인지, 비인지 그걸 지켜보는 화자인지도 애매하지만 마치 이런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비는 오독의 문자로 떨어지고 있다.

비는 존재의 키를 키우고 인간 내면을 파고드는 면이 있다고 하더니 이 시가 주는 느낌도 한 폭의 비밀스런 수채화처럼 은은하고 깊게 파고든다.

정지용은 산문 수수어에서 밝히기를, 어느 해 봄비에 귤나무를 옮겨 심을 작정이라고 했다. 고향 후배격인 박지우 시인은 봄비에 비의 몸뚱이들을 하염없이 관찰했겠다. 오월 장마에 즈음한 나는 일없이 시집만 잡았다 놓는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