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복수 / 여영현

톰소여와허크 2023. 5. 11. 16:23

복수 / 여영현

 

어릴 적 옆집에 용구가 살았다

풀빵 장사 하는 제 엄마를 돕는다고

학교도 자주 빠졌다

붕어빵에 든 달콤한 팥처럼

노릇노릇한 해가 기울면

용구는 제 엄마의 리어카를 끌며

다가왔다

 

그 친구는 소아마비를 앓았는데,

노을은 다정해서 좀 슬프다고 했다

가난의 색상이 있다는 걸

나도 알았지만 침묵했다

 

그런 용구가 병원에 실려 갔다

붕어빵을 뒤집는 갈고리를 만들다가

한쪽 눈을 잃었다

 

친구야, 철 심이 탁 하고 튀더니 앞이

환하더라, 우리가 빨아먹던 샐비어처럼

세상이 빨갰어.

 

용구는 제 엄마가 죽고 나서도

혼자 붕어빵 장사를 했다

밑천 없는 노동으로 더 가난해졌다

 

한데 이상한 건 붕어빵을 뒤집을 때마다

갈고리로 꼭 눈을 찍더라,

 

이젠 용구도 없다

교통사고였는데 죽어서도 한쪽 눈을

감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 잠깐을 사랑했다, 천년의시작, 2023.

 

 

감상 시인은 시집 속에 수록된 바닥의 힘에서 바닥은 힘이 세고/ 진짜는 무언가 변하게 한다/ 당신도 바닥을 칠 수 있다라고 노래했다. 바닥을 친다는 말은 더 이상 내려갈 데도 없는 좋지 않은 상황에 떨어진 것을 의미하지만 그제야 바닥을 치고 상승할 수 있다는 반전의 시작점이란 느낌도 준다.

바닥에 떨어진 적 없고 그래서 바닥을 온몸으로 살지 않은 부류가 바닥을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자칫 감성만 좇는 유치함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 바닥은 가짜다.

리어카 행상으로 풀빵 장사하는 어머니, 어머니를 돕는 용구, 그런 용구와 가난의 색상을 나누어 갖는 화자인 는 바닥에 익숙한, 그냥 바닥 같은 진짜다. 바닥을 깊이 이해하는 사람이다. 깊이 이해해야 깊이 사랑할 수 있고, 그 사랑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라면, “진짜는 무언가 변하게 한다는 말에도 수긍하게 된다.

시를 읽고 제목을 새로 보면, 조금 웃다가 다시 슬퍼진다. 붕어빵 뒤집는 갈고리를 만들다가 그만 한쪽 눈을 잃어버린 용구의 복수는 갈고리로 붕어빵 눈을 찍어 뒤집는 일이다. 그의 생업인 붕어빵에 엉뚱하고 소심한 복수를 가한 셈이다. 사실 갈고리는 생활의 방편일 뿐 애초에 복수의 도구가 되지 못한다. 가난한 용구는 천진하기까지 하지만 세상은 그런 용구에게 끝끝내 손을 내밀지 않는다.

용구가 복수해야 할 진짜 대상은 붕어빵이 아니라 다른 데 있어 보인다. 용구의 감지 못한 한쪽 눈에 담겨 있는 세상, 바닥에 대한 예의를 잃어버린 세상을 용의 선상에 올려두지만 세상은 아랑곳없이 오늘도 돌아간다.

저녁놀도, 붕어빵의 팥도, 샐비어 꽃도 붉게 물든 날, 용구를 잃거나 용구를 읽은 사람들의 얼굴이 잠시나마 붉어졌다면 그의 복수극이 절찬리에 상영된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