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숲에서 한나절

톰소여와허크 2023. 6. 16. 01:00

남영화, 숲에서 한나절, 남해의봄날, 2020.

 

 

- 숲 해설사이기도 한 작가는 자연을 친구로 두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고 한다. 자연은 발견의 기쁨을 주며 주변을 새롭게 인식하게 해주고 아름다움에 눈뜨게 해준다. 자연이란 친구를 다른 사람에게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이 글을 쓴다고도 했다.

작가는 꽃다지의 로제트에 마음을 빼앗긴 적이 있다. 로제트는 뿌리잎이 땅에 바짝 붙어 방사형으로 자라는 식물이다. 방사형은 중심이 되는 한 점에서 거미줄이나 바큇살처럼 뻗어 나간 모양을 일컫는데 냉이, 달맞이꽃, 민들레, 지칭개, 꽃마리, 개망초 등이 로제트 형이다. 로제트 형 식물은 꽃대를 밀어올리고 성장하면서 아래쪽 잎과 줄기에 햇빛이 잘 들게 하기 위한 생태적 선택을 통해서 원래의 모습을 바꾸어 간단다. 이 과정도 신비롭지만 로제트 형으로 남아 있는 뿌리잎 자체가 매력적이란 게 작가 생각이다. “때론 시작이야말로 결과보다 더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때 이미 어떤 꽃을 깊이 품었다면 비록 아직 꽃피우지 못했다 해도 이 꽃다지 잎처럼 충분히 아름다웠던 것이란 말에 공감이 간다. 이 아름다움이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닐 것이다. 로제트 잎 상태로 월동까지 하면서 어느 날 기지개 겨고 있는 식물을 보게 된다면 감탄사와 함께 가상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작가가 도톰한 꽃다지 로제트를 말할 때, 내 머릿속에는 동글한 꽃마리 로제트가 지나간 것도 같다. 작가는 꽃마리 꽃을 두고 꽃을 자세히 들여다볼 줄 몰랐던 지난날들처럼 나는 얼마나 자주, 많은 소중한 것들을 그냥 흘려보냈을까. 지나고 나서야 그 모든 것이 사무친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작은 꽃마리가 주는 위안은 결코 작지 않다. 꽃뿐만 아니라 뿌리잎 로제트를 반기는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다. 열손가락 끝을 위에서 본 듯한 동글동글한 꽃마리 잎을 마주하는 기쁨을 아는 사람만 알 것이다.

숲과 자연은 작가에게 행복을 발견하는 능력을 일깨워 주웠다. 작가는 루페(확대경)로 코스모스 꽃의 내부를 보고서야 코스모스 이름이 질서와 조화의 의미를 갖는 우주와 직결되는 걸 몸소 느낀다. 코스모스 꽃 몽우리도, 암술도, 수술도 다 터지거나 터지기 직전의 별 모양을 하고 있는 걸 스스로 확인하고 이때 느낀 기쁨을 언급하며, “다른 자연들도 더 자세히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을 준다고 했다. 작가는 음나무 고목에 가시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놀라운 일로 받아들인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늘 가시가 있는 줄로만 알았던 음나무인데 고목이 될수록 가시를 스스로 떨어뜨린다는 것이니 삶의 이치 하나를 슬그머니 알려주는 걸로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발견의 기쁨은 수시로, 도처에 생겨나기 시작하고 그걸 나누고 싶은 마음에 작가는 책 숲에서 한나절을 썼다. 숲의 나날이 쌓이고 못다 한 이야기는 근래 숲의 언어로 출간되어 읽히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