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아버지의 해방일지』, 창비, 2022.
- 작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실제 빨치산 출신이다. 1990년 출간되었다가 판매 금치 처분을 당하기도 했던, 작가의 『빨치산의 딸』(1990)을 읽으면 두 분의 생각과 삶이 어떠했는지 혁명이 좌절된 반공사회에서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나 순서를 달리해서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먼저 읽게 된다.
작가 나이 스물다섯에 쓴 『빨치산의 딸』은 부모의 증언이 토대가 되었던 소설이지만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그로부터 30여년이 더 지나서 작가의 시선이 전보다 많이 투영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전작을 읽지 않으니 표현이 애매해진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3일간의 장례식장 풍경이 이 소설의 중심축이며 여기에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들이 평소 아버지와 맺고 있었던 인간관계나 과거 인연이 소설 하나하나의 장면을 구성한다. 실제 있었던 일과 가공의 일이 섞여 있는 중에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에 한숨짓다가도 명랑하고 유쾌한 사건과 입담에 웃을 때가 더 많은 소설이다. 삼일장이 끝나고 화장한 뼛가루를 아버지의 지난 흔적을 좇아 뿌릴 때쯤이면 결국, 『아버지의 해방일지』가 빨치산 아버지를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과 존경의 마음으로 딸이 아버지를 보내주는 마지막 의식과 연결되는 느낌을 받게 된다.
장례식장을 찾은 사람 중에 한명은 박 선생이다. 아버지와 초등학교 동창이며 교련선생을 지냈으며 조선일보를 보는 보수 인사다. 한겨레신문을 찾는 아버지와 서로 보는 신문을 가지고 흉을 보며 말싸움을 하지만 매일 만나고 정을 나눈다. 이념과 생각이 다르면서도 상대의 됨됨이를 존중하고 가까운 친구로 지낼 수 있다는 것을 두 사람은 거짓말처럼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됨됨이는 남의 일에 무심하지 않는 성정과 그가 즐겨 쓰는 말에 있었음을 작가는 안다. 오갈 데 없는 방물장수를 집에 재우다가 마늘 반접을 도둑맞기도 하고, 빚보증을 서고 돈을 떼이기도 하는 등 실망스런 일 끝에 아버지가 내놓은 말은 오죽하면 그럴 거냐는 거다. “오죽흐먼 나헌티 전화를 했껐어, 이 밤중에!”하는 식이다. 이도 통하지 않으면 민중, 평등을 운운하는 데 어머니에게 가장 잘 먹히는 말이다.
작가는 『아버지의 해방일지』 후기에서도 “사람이 오죽하면 글겄냐. 아버지 십팔번이었다. 그 말 받아들이고 보니 세상이 이리 아름답다. 진작 아버지 말 들을걸 그랬다”며 ‘오죽하면’을 한 번 더 언급한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람이 사람에 대한 강렬한 믿음과 지지, 예수나 부처 못잖은 무한한 사랑의 의미가 ‘오죽하면’에 다 들어있는 것 같다.
정지아 작가는 권정생의 삶에 영향을 받아 『천국의 이야기꾼, 권정생』을 쓰기도 했다. 권정생 유서를 읽고 울었다고 했는데 고생스러웠던 권정생의 삶과 아버지의 삶이 겹쳐 보였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두 분은 그게 사회주의든 뭐든 간에 나누어서 평등해지는 세상을 꿈꾼 것도 닮았다. 정지아 작가의 삶과 문학이 구례와 안동을 잇고 있다는 생각이 과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