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방울 슈퍼 이야기

톰소여와허크 2023. 7. 17. 22:09

황종권, 방울 슈퍼 이야기, 걷는사람, 2023.

 

 

- 방울 슈퍼 이야기는 황종권 시인의 재미나는 에세이집이다. 방울 슈퍼는 시인의 어머니가 여수에서 운영하던 가게 이름이고, 가게에 딸린 방 한 칸에서 식구가 살았다고 한다. 시인은 집안 문제로 할머니 댁에서 맡겨져 자라기도 했는데 이번 에세이집에서 방울 슈퍼를 중심으로 시인의 유년 시절 기억이 다수 소환된다.

방울 슈퍼의 주인아주머니인 어머니는 슈퍼 금고를 도둑맞고 눈물을 보이면서도 남을 의심하는 일을 꺼렸다. 아들에게 주변을 챙기는 사람이 되라는 주문도 수시로 한다. 여행지에서 남이 버리고 간 오물을 줍는 것으로 아들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책의 적잖은 부분은 어머니에 대한 헌사이기도 한데 특히, 아들의 중학교 선생이자 낮술을 즐기는 류 쌤이 어머니의 구멍 난 양말을 보고 건넨 천 원 이야기는 퍽 아름답게 느껴진다.

자칫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상황인데 어머니의 반응은 뜻밖에 다소곳하다. “비록, 양말 한 켤레지만, 누군가 날 생각해준다는 게 참으로 크게 다가오더라는 어머니의 말을 옮기며,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천 원도 못 베푸는 마음으로는 못 사는 거라는 어머니 말씀을 시인은 경전 그 이상으로 받아들인다. 류 씨 성을 갖고 낮술 좋아하는 또 한 명의 류 쌤과의 인연도 각별해 보인다. 류 쌤은 비싼 등록금 내고 수업에 나서려는 사람을 거듭 낮술로 발목 잡게 한 장본인인데 시인은 이 또한 지구의 무게를 덜고 술잔의 무게만큼 시를 견디게 하는 향기로운 순간이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건장한 체격의 황종권 시인은 야구 빼고 모든 운동을 잘한다. 어떤 음식이든 잘 먹는 식성도 지녔다. , 닭다리는 예외란다. 닭다리가 자기 몫으로 돌아오지 않는 여동생의 고백을, 뒤늦게 알아들은 이후다. 여기에 문예반 입시를 지도했던 학생이 하필이면 통닭을 주제로 한 글쓰기에서 미끄러지고 맘 아파한 것이 시인에게 또 다시 전이되었으니 이번 생에 닭 요리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대신 시인은 일평생 그리워할 맛도 간직하고 있다. 매실 택배 일을 거드는 아르바이트 시절, 광양시 다압면 할머니가 끓여 준 라면이다. 달걀 세 알까지 따라온 라면인데 인생 최고의 맛이라고 할 만한지 직접 책을 보고 평해 보면 좋겠다.

옥탑방에 살던 황종권 시인은 반지하에 살던 이병철 시인을 벗으로 존중하며, “삶이 글이 되고, 글이 삶이 되는 일을 잘도 보여주었다고 여긴다. 몇 해 전, 대구 물레책방을 찾은 시인으로부터 이병철 시인의 산문 ;를 건네받고 좋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황 시인 자신이 가고 싶었던 길을 벗이 먼저 걸었으나 친구는 친구대로 자신은 자신대로 가야 할 길이 있음을 말한다. 시인은 이번 산문 방울 슈퍼 이야기로 그런 자신의 희망을 현실로 바꾸어놓았다. “엄마가 자랑할 한 문장으로 기꺼운 타인이 되고 싶었다는 시인의 소망이 진즉에 실현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방울 슈퍼의 아들은 아직 흘릴 땀방울이 많다고 얘기할 것도 같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