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자기 앞의 생

톰소여와허크 2023. 9. 3. 18:09

 
에밀 아자르(용경식), 『자기 앞의 생』, 문학동네, 2003.
- 에밀 아자르는 『자기 앞의 생』으로 1975년 공쿠르 상을 받는다. 1956년 『하늘의 뿌리』로 공쿠르 상을 받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인 것은 로맹 가리 사후 유서에서 밝혀졌다. 에밀 아자르만 인정하고 로맹가리를 부정했던 일부 평론가들이 무색해졌을 법하다.
1978년 발표된 노래 <모모>는 당시 고등학교 3학년인 박철홍이 곡을 만들었는데 병상에서 읽은 『자기 앞의 생』이 노래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대학교의 김만수가 가사와 곡을 받아서 일부 개사한 것으로 보인다. 개사 과정에 “모모는 말라비틀어진 눈물자국이다”라는 구절이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는 구절로 바뀌었다. 이는 미하엘 엔데의 『모모』의 영향이 씐 듯한 인상을 받는다. 개사한 것도 나름 멋있는 표현이지만 『모모』소설 내용은 시간을 아껴서 뭔가를 부지런히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인해 정작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고 산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므로 노래가사 내용과 상반되기는 한다.
노래 가사 중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이란 구절은 『자기 앞의 생』을 충실히 재현한 것이다. 니스는 프랑스 남쪽의 지중해에 면해 있는 지방이다. 러시아 태생인 로맹 가리가 폴란드를 거쳐 어머니와 함께 청장년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같은 러시아 태생인 샤갈이 말년을 보낸 생폴 드 방스도 니스 인근이다.
『자기 앞의 생』에선 알제리 출신 하밀 할아버지가 니스 이야기를 들려주는 걸 모모는 좋아한다. 거리에 광대가 있는 것도, 미모사 숲이나 종려나무가 있다는 것도 좋단다. 앞서 말한 대로 노래 가사로 수용된 흰 새에 대한 이야기도 모모는 좋아한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모모가 하밀에게 한 것이다. 하밀의 대답은 왔다갔다 한다. 자신은 한 여자를 잊지 못하고 있으며 그 기억이 사라지기 전에 죽음에 가까이 왔음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다가, 정작 모모의 질문에는 그 나이 때는 모르는 게 낫다고 했다가, 재차 물었을 때는 그렇다고 대답해서 모모를 울게 만들기도 한다.
모모는 출생의 비밀을 갖고 자란 아이다. 비밀은 끔찍한 고통에 닿아 있지만 모모 앞엔 모모의 생이 있을 뿐이다. 모모와 아이들을 부모 대신 돌봐주는 이는 창녀 출신인 로자 아주머니다. 로자 아주머니나 주변 사람들은 대다수 이민자 가정으로 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도움이 필요한 이웃엔 더할 수 없이 선량한 태도를 보여준다.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네 살이나 한꺼번에 더 먹은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다. 로자 아주머니의 시체 곁에서 향수를 뿌려가면서 3주를 견딘 끝에 이웃에 발견된다. 모모는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을 믿기로 한다.
하밀 할아버지와 모모를 잇는 또 하나는 끈은 빅토르 위고다. 하밀 할아버지는 늘 빅토르 위고의 책에 손을 얹고 있고, 모모는 빅토르 위고가 썼을 것으로 짐작되는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신도 써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신이 흐려진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를 빅토르로 잘못 부르기도 하는데, 빅토르와 모모, 모모와 에밀 아자르가 묘하게 겹쳐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독자에 따라서는 『자기 앞의 생』을 『장발장』에 견주기도 할 것이다.
소설 말미에 모모는 자신의 분신과 같은 우산인 ‘아르튀르’를 돌려받는데 우산 이름과 아르튀르 랭보와 어떤 관련이 혹시라도 있을지 의문을 메모해둔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