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모모

톰소여와허크 2023. 9. 14. 16:27

미하엘 엔데(한미희 역), 모모, 비룡소, 1999.

 

 

모모1970년 탄생한 책이다. 소설 속 모모는 폐허가 된 원형극장에 사는 고아 소녀다. 미하엘 엔데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끝없는 이야기의 주인공 바스티안도 어머니 없이 외로움 속에 자라는 아이다. 다만 모모는 친구의 따돌림으로 괴로워하던 바스티안과 다르게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모모는 원형극장에서 친구들을 많이 사귄다. 친구들이 모모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얘기를 잘 들어주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귀를 기울여 다른 사람을 말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며 서술자는 모모의 재주를 특별한 것으로 여긴다.

원형극장을 찾는 많은 친구들 중에서도 도로 청소부 베포와 관광 안내원 기기는 더 각별한 친구다. 베포는 말이 더디고 누가 물어도 웃기만 하고 대답이 없는 반면에 기기는 기발한 생각을 말로 떠들면서 주위의 주목을 받는다.

모모 생각에 따르면 베포는 진실이 아닌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고, 기기는 꾸며낸 이야기조차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며 자기 말에 흥을 내는 사람이다. 베포와 기기는 서로를 존중한다. 모모의 귀 기울여 듣는 태도가 서로 다른 두 사람에게 영향을 준 것이다.

한 번도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지 않고 수문이 열리듯 새로운 이야기를 끊임없이 쏟아내는 기기의 모습은 미하엘 엔데가 추구하는 작가 모습이 투영되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간 도둑인 회색 신사의 영향권에 든 기기는 자신의 말재주로 부와 성공을 얻는 대신 이야기에 흥을 내던 이전의 모습을 잃어버린다. 기기는 다른 누구도 아닌 기기일 뿐이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미하엘 엔데 본인도 그런 슬럼프를 극복하면서 작가로서 매번 재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리라 짐작된다.

모모는 회색 신사에 대항해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자원한다. 모모는 회색 신사를 향해서, “아무도 아저씨를 사랑하지 않죠?”라는 말로 회색 신사의 존재감을 미미하게 만들어 버리는 결정적 한 장면을 만든다.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1975)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도 모모다. 주인공 이름만 겹칠 뿐만 아니라, 자기 앞의 생에서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라고 두 번이나 묻게 되는데 모모의 위 대사와 묘하게 연결되는 점이 있다.

1978년 발표된 가수 김만수의 노래 <모모>자기 앞의 생에 등장한 모모를 충실히 재현해서 가사를 쓴 것이다. 발표 과정에 가사가 바뀌어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라는 구절이 새로 들어갔는데 이는 자기 앞의 생이 아니라 모모의 영향이 더 커 보인다.

 

시간은 삶이며, 삶은 가슴 속에 깃들여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아끼면 아낄수록 가진 것이 점점 줄어들었다는 구절에서 보듯 소설 모모는 계산적으로 바쁘게 살아가는 삶에 대해서 삶의 의미와 재미가 결코 그런 데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항변하는 내용이다. 옆도 보고 뒤도 보고, 님도 보고 풀도 보는 중에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시간을 주체적으로 사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가 있다. 그러니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이기를 소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쪽 겨드랑이에 거북이를 끼고 다른 한 손에는 꽃을 든 소녀 모모든, 우산 아르튀르를 들고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하는 소년 모모든 모모는 모모다, 모모가 모모가 아닌 날들이 이어지면 아마도 시간의 책장에 갇힌 꼴이 되고 말 것이다. 책 한 권으로 끝없는 모험을 샀던 바스티안이 되어 어디론가 스미는 꿈이 세상 모모와 내 안의 모모에게 들썩이기를 빈다. 닫힌 책장이 조용한 중에도.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