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톰소여와허크 2023. 11. 5. 18:45

 

한국문화분권연구소 김용락,박상봉 편저,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 마음시회, 2021.

 

 

- 백기만 시인은 상화와 고월(1951)에 이어 씨뿌린 사람들(1959)을 통해서 이상화와 이장희뿐만 아니라 대구 경북의 예술인들의 삶과 예술을 채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분이지만 본인의 책을 따로 엮지 못한 데다 한 세대가 바뀌어가는 동안 별다른 조명도 받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서 기획된 책이 백기만과 씨뿌린 사람들이다.

1부는 백기만에 대해서 살피고, 2부는 씨뿌린 사람들에 언급된 예술인들을 다시 호명하고 재조명하는 작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씨뿌린 사람들(1959)은 작고 예술가들을 가까이 알고 지냈던 인물이 글을 쓴 것이라면, 이번 책은 이후에 축적된 자료로 원전을 보완하는 장점도 있겠지만 인물에 따라 축적된 연구와 자료가 부족해서 곤란을 겪은 경우도 보인다. 이참에 씨뿌린 사람들(1959)도 같이 활자화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백기만에 대한 소개 중 박용찬은 이장희를 데뷔시킨 금성동인으로서의 면모, 잡지 신지식과 시선집 조선시인선집의 편집인으로의 활약상을 얘기한다. 상화와 고월, 씨뿌린 사람들출간뿐만 아니라 이상정 장군(이상화 시인의 형)의 유고집 중국유기(1950)를 발간하고 해방 후에도 언론매체에서 진보적 성향을 보여주었음을 언급한다.

손진은은 백기만의 시 거화, 산촌모경을 소개하며 김동환, 백석 시의 영향 관계를 생각해보게 해준다. 그 밖의 백기만의 다른 시들은 백기만 전집(김두한, 1998)을 살펴야 할 것이나 이 책 또한 판매가 중단된 상태이다. 대구통합도서관에선 아예 검색되지 않고 국립중앙도서관에서 겨우 검색되는 정도이니 이런 이유 등으로 시인의 시가 좀처럼 세상 빛을 보지 못하는 거 아닌가 싶다.

김용락은 경북문학협회(1957), 경북문화단체 총연합회(1959) 결성에 기여했던 백기만이 지역에서 저평가 된 원인을 그의 진보적 활동에서 찾는다. 백기만은 반민특위 조사위원이었으면서 여운형계인 근로인민당 경북지부위원장으로 일했다, 이후 사회대중당의 경북도당위원장을 역임한 진보 혁신 계열의 인사였기에 반공이 국시인 군사정부의 눈 밖에 나서 고초를 겪었다는 얘기를 전한다.

방송 프로듀서 출신인 이영환은 지역에서 찬밥 신세인 백기만이 뒤늦게 화가 김용성, 시인 이윤수 등의 노력으로 대구시민문화상이 수여되었을 때의 영상을 확인시켜 준다. 동성로 은다방에서 권태호가 메기의 추억>을 축가로 부른 그날, 언어장애가 있던 백기만은 오열하고 식장은 눈물바다가 되었다고 한다.

박상봉은 1987년 잡지사 측의 요구로 이상화 시인의 대구만세운동 자료를 찾다가 백기만이란 존재를 알게 된 이후, 백기만 특집으로 방향을 바꾸어 글을 쓴 이래, 이번 책까지 백기만을 세상에 알리는 데 애를 쓰고 있는 장본인이다.

 

2부는 백기만이 주목했던 씨뿌린 예술가’(현진건, 이상화, 이장희, 이육사, 오일도, 백신애, 박태원, 김유영, 이인성, 김용조)와 이를 우정으로 기렸던 사람들의 이야기다. 1951년 당시에는 백기만, 이설주, 양주동, 이은상, 권영철, 이윤수, 김성도, 박태준, 이형우, 이원식, 최해룡이 참여했고, 2021년 이번에는 장호철, 박덕규, 이동순, 이구락, 이무열, 이중기, 박상봉, 김정학, 천광호가 참여했다.

이 중에 이동순 시인은 20대 때 이장희의 칙칙한 불행과 비극성에 빠져들어 그의 무덤을 찾아 신암도 일대를 헤매던 시절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이동순 시인은 씨뿌린 사람들의 표지화 버드나무 그림이 정점식 화가의 작품이라고 알려주는데 이장희의 시에도 버드나무가 몇 번 등장하기에 연관성이 있을 것도 같다. 백신애 추적자로 알려진 영천의 이중기 시인은 앞서 백신애 삶을 언급했던 이윤수의 글에서 무려 스무 가지가 넘는 오류를 범했다고 했으나, 이윤수 시인의 글도 퍽 재미나게 읽힌다.

이윤수는 삼십일 세로 세상을 떠난 백신애 이야기 끝에 아직 그의 노모가 대구시 점에 혼자 살아계시며 청각을 잃어버린 그 노모는 어지러운 이 세상의 듣기 싫은 모든 소리를 차라리 나는 이렇게 들을 수 없으메 모르노라는 듯, 아무 표정 없이 그날그날을 살아가시는 모습이 떠오른다고 적었다.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이런 이야기가 소중하게 와 닿는다. 또한, 그 기록을 위해 발품을 팔고 책을 엮느라 정성을 다했을 백기만 시인의 업적에 걸맞은 정당한 평가도 필요해 보인다. 백기만 전집으로 묶인 시편들을 우선 찾아봐야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