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시인의 초상
톰소여와허크
2024. 1. 28. 21:56
김영태, 『시인의 초상』, 지혜네, 1998.
ㅡ김영태 시인은 시인의 초상을 즐겨 그린 화가이면서 음악과 무용에 깊이 천착하여 춤 평론의 장을 연 인물로도 평가받는다.
『시인의 초상』은 시인의 인물 소묘와 함께 시인의 시와 주변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연에 따른 김영태 자신의 소회를 덧붙인 대목도 잦다. 자신과 재주가 비슷한 이제하 시인에 대해선 자신은 사진을 보고 그림을 그리는 데 비해서 이제하는 실물을 보고 그걸 기억해서 그림을 그린다고 했다. 이제하는 키리코, 뭉크, 프란시스 베이컨의 영향을 받았고 자신은 장 뒤뷔페, 구스타프 클림트, 에곤 쉴레의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이제하는 직장생활이 짧아 자유인에 가까운 것에 비해 자신은 30년 월급쟁이 한 것이 한이다. 김영태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로 독신으로 살다 간 에릭 사티를 우선 꼽는다. 김영태 본인도 기러기 아빠로 독신 비스무리하게 지내긴 했다.
책에 언급된 아흔 명 가까이 되는 시인들 중 돌아가신 분이 훨씬 많다. 김영태(1936〜2007)도 고인이 된 지 오래다. 성춘복 편을 읽으니 둘이 동갑이고 여행 친구다. 성춘복 시인은 김구용의 제자인데 스승의 시집을 자신이 맡아서 내준다. 천상병이 죽은 줄 알고 유고시집을 내는 데 앞장선 이도 성춘복이다. 『시인의 초상』 또한 성춘복이 출간을 주도했다.
김영태 시인은 한때 한두 살 아래의 마종기, 황동규와도 자주 어울렸다. 김영태는 황동규 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65년이면 동규, 종기나 마나 모두 총각 때이고, 시를 찾아 쉴 새 없이 떠나는 방랑자였다. 그 방랑자들은 <방랑 환상곡>(슈베르트)을 이해하는 음악 입문자들이기도 했다. 무솔그스키나 쇤베르크까지 우리 상에 차려 놓은 요리였다.”고. 세 사람은 합동 시집 『평균률』(1968)을 출간한다.
김영태는 1971년 초 3.1빌딩 내 은행에서 근무했다. 최하림 시인의 부탁으로 김영태는 첫 산문을 엮게 된다. 김영태가 붙인 제목은 ‘떡’이었지만 최하림은 『지구 위에 조그마한 방』(1977)으로 제목을 바꾸어 뽑고 10쇄 이상 찍게 된다. 제목을 바꾼 최하림 덕이 커 보인다. 최하림 편에 당시 관철동 풍경(현 종각역 인근)을 김영태는 이렇게 적어두었다.
“몇 발자국 걸으면 유전다방이 있고, 어느 날 유전다방 마담이 내게 전화를 한 건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다방에 천상병이 혼자 있는데 ‘향수 냄새가 진동한다’는 보고였다. 나는 그 진위를 알기 위해 유전다방에 갔다. 한무숙 선생 댁에서 기식하던 천 형이 간밤 숙취 끝에 더듬거려 찾은 미니 양주병의 영주를 들이마신 사건이었다. 그건 양주가 아니라 디오르 향수였다. 유전 2층엔 박재삼이 바둑평을 쓰고 있었고, 몇 집 건너 박목월 선생이 오후면 들르는 「심상」사가 있었다. 최하림 형은 「심상」사 부근 「지식산업사」에서 주간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지식산업사」 건너 「민음사」 그 중간에 있는 일식집 ‘은지’는 나의 단골집이었다.” 고.
박재삼 시인 편을 찾아보니, 시인의 큰딸이 미국에서 마종기의 도움을 받은 걸 고마워하는 내용이 나온다. 서울에 들른 후배 마종기에게 선물을 건네며 박재삼이 수줍어하던 얼굴을 김영태는 기억한다. 김영태가 보기엔 그런 류의 사람으로 “박재삼 위로는 박용래의 천진함이 있고, 그 동년배로는 천상병의 무구함, 재삼 형이 풍이 도졌을 때 “아 재삼, 그 자슥이 와 그리 됐노!” 걱정하던 진주의 수재 이형기” 정도가 있단다.
김종길 시인과의 인연도 메모해둔다. 김종길 시인의 『시론』을 김영태는 자신의 문학의 길잡이로 삼았고, 시선집 『하회에서』(1977) 표지 인물 소묘를 그려주기도 했다. 선생의 이목구비가 편편해서 애를 먹었고 강연 들을 때는 선생이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 분간이 어려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따르고 싶은 몇 안 되는 시인임을 슬쩍 밝히기도 했다.
김영태와 김종삼이 자주 출입했던 ‘아리스’에 대한 언급은 이수익 편에 보인다. “옛날에 ‘아리스’ 찻집은 성공회로 올라가는 언덕 옆에 있었다. 그 위쪽에 ‘유성’이란 찻집도 있었다. 1950년대 말 풍경이다. 김수영, 김종삼, 전봉건 등이 40대 초반 때이고 ‘아리스’나 ‘유성’에 드나들던 우리는 20대 초반 때였다. ‘아리스’에 가면, 이대 불문과에 다니던 김하림이 긴머리를 늘어뜨리고 앉아 있었다. 이수익, 정진규, 이승훈, 주문둔, 이유경 그리고 나는 「현대시」 동인이었고, 얄팍한 동인지가 나오면 ‘아리스’ 근처 술집에서 소주와 오징어를 씹었다."고 했다.
『시인의 초상』에 천상병, 전봉건은 나오고 김수영, 김종삼이 빠진 이유는, 이 글을 연재할 시점에 두 시인은 이미 작고했기 때문이다. 그간의 ‘예술가 초상’에서 김영태 시인 스스로 꼽은 최고의 작품은 천상병, 김종삼 순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