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일흔에 쓴 창업일기

톰소여와허크 2024. 2. 16. 21:51

이동림, 일흔에 쓴 창업일기, 산아래 시, 2023.

 

-대구 앞산공원 쪽에 은적사가 있고, 그 옆자락에 안일사가 있다. 그 중간쯤 산 아래 남부도서관이 있고 큰길 건너편 카페골목 초입에 시집 전문 책방인 산아래 시가 있다. 일흔에 쓴 창업일기는 책방지기인 저자가 시집 전문 책방을 개업하기까지의 준비 과정과 운영의 묘를 밝히고 그 사이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간명하게 기록해 놓은 책이다.

왜 하필 시집 전문 책방인가 하는 의문엔, 독자를 만나지 못하는 시집에 대한 안타까움이 시집 전문 책방으로 이어지게 된 거라고 말한다. 차 안에 늘 시집을 갖고 다니고 읽은 시집을 선물하는 평소의 태도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저자는 우연히 읽은 시가 사람의 마음을 흔들고 때로 죽비로 내린다고 했다. 시의 힘을 믿으며, 커피 마시듯 시를 읽고 이야기하는 문화를 그리워하다 보니, 자연스레 주변 상인들과 시 축제 논의도 하게 된단다.

애초에 책을 장만하는 데에는 돈이 들어가지 않은 것도 다른 책방과 구별되는 점이다. 주로 자비출판으로 낸 책을 작가에게 받아서 정가의 10프로 할인가로 팔고 그 판매가의 60프로를 정산해서 작가에게 돌려주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시를 가까이 두고 읽는 걸 소망하는 저자의 마음이 담긴 종이 글씨다. 책을 안 사고 미안해하며 나가는 손님을 보고, 저자 자신이 더 미안해하며 쓴 내용을 그대로 옮기면,

시집을

꼭 사야하는

책방이 아닙니다.

 

대신

어느 시집이라도 좋으니

() 한두 편은

꼭 읽고 가시면

고맙겠습니다.”

 

얼마간의 이익을 내야 가게 유지가 되겠지만 저자는 이익을 내는 자체를 목표로 두지 않는다. 손님이 찾지 않아도 저자가 시간을 낭비할 것 같지도 않다. 왜냐하면, “나는 이 책방을 열고 나면, 틈나는 대로 책장 속에서 기다리는 시에게로 다가가 서툰 말 걸어가면서 날로 친해질 것이다. 아무 시집이나 손에 잡히는 대로 꺼내서 아무 페이지나 열어가면서 시와 사귈 것이다라는 스스로의 약속에 충실하면 되니까.

책방을 내는 각오도 다른 사람과 구별되는 면이 있다. 지난 삶을 돌아보며, “많이 늦었지만, 삶의 가치를 보다 바르게 깨달으며 어질고 선한 삶을 실천하며 살겠다는 그런 다짐의 청정한 도량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이 그렇다. 단순한 창업에 대한 안내서가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책으로 읽히는 이유다. 책방이 흔해지기를 바라는 독자로서 저자의 말마따나 독박 같은 대박이 있기를 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