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영화 <파묘>(장재현 감독, 2024))를 봤다. 일본의 미래를 걱정하는 나라무당이 친일파 무덤 밑에 침략전쟁 영웅의 관을 함께 쓰고, 우연찮게 이 땅의 민간 무속인들(무당, 박수무당, 지관, 장의사)이 그 의도를 꿰뚫고 독립군처럼 저항하는 이야기다. 좌파 영화란 소문을 듣고 보았더니 이런 우파 영화가 없다. 민족적인 시각이 나쁠 건 없지만 나라와 이념을 떠나서 전쟁으로 고통받았던 현실에 대한 묘사가 있었으면 좌파 영화로 불러도 좋았을 것이다.
어쨌든 영화는 시종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다. 풍수와 묏자리를 보는 장면, 무당굿 장면 등이 어울려 민속학적인 공부도 제법 된다.
집에 와서, 사진집 <김수남>(열화당, 2017)을 펴본다. 김수남 작가는 굿 장면을 주로 찍어서 사진박수로 불리기도 했던 인물인데, 생전에 방송에서 그가 했다는 말이 인용되어 있다. “죽음이 곧 삶의 시작이고, 삶의 끝이 죽음이다. 죽음으로 인생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민족은 굉장히 슬퍼하고, 새로운 인생을 믿는 사람들은 아주 즐겁게 보낸다. 그런데 그 사이에 굿이 있다. 죽음과 삶 사이의 선을 긋는 위에 무당이 있어서 살아 있는 사람들을 달래고, 가는 이들을 잘 보내준다.”고 했다. 영화에서 보여주었다는 대살굿은 황해도 쪽이 뿌리라는데 김수남의 작은 책자에서는 빠져 있는 듯하다.
굿 사진을 찍기 위해서 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오지 구석구석을 다닌 작가지만 가까운 북한만은 오가지 못했을 것이다. 영화 <파묘>에서 묫자리가 남북의 경계에 있고 그로 인해 더할 수 없이 나쁜 상황이라고 말들 하는 것은 분단으로 인해 남북이 힘을 못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메시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지금도 전쟁광이나 못된 사람들이 저지르는 폭력으로 인해 억울하게 죽은 망자들이 저승으로 바로 가지도 못하고 산 사람 곁에 있을 줄 안다. 평화로 가는 길이 무엇인지 누구에게 물어야 하나. 귀한 말씀, 좋은 말씀...말씀으로 사는 절대자나 성인이나 학자 대신에 남 사정 깊이 헤아리는 무당에게 묻는 게 더 실용적인 처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얼핏 드는 밤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