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 미오기전
김미옥, 『미오기傳』, 이유출판, 2024.
재야의 고수로 주목받던 김미옥 작가는 두 권의 책을 약간의 차이를 두고 출간했다. 『감으로 읽고 각으로 쓰다』는 책 이야기를 매개로 한, 세상 읽기가 아닌가 싶고, 『미오기전』은 주요 장면 위주로 그것도 슬픔과 낙담의 기억이 있던 곳을 찾아가되, 그 안에 웃음과 위로의 정서가 스미게끔 정성을 들인 글이다. 『미오기전』 서문 말미에 아픈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자신의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 책이 아프거나 나쁜 기억에 대한 부정만 있다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자신에게 닥친 불행이 오히려 자신과 주변을 깊이 성찰하는 계기도 되지 않냐고 말한다. 지금의 상처가 더 나은 삶의 밑거름이 되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보듬는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역설도 분명 있다. 저자의 경우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아픈 일, 나쁜 일 모두 자신의 역사로 받아들이며 그런 기억조차 그 안에 따스하고 뭉클한 뭔가가 있다는 메시지를 담으려 애쓰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저자는 어머니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가 가장 불행을 느낄 때 태어나서 크게 환영받지 못했단다. 병원까지 갔다가 돌아섰다고 하니 자칫 미오기전은 쓰이지 못할 뻔도 했다. 그때의 아이는 형제든 친구든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고 다부지게 자라주었다. 욕도 당할 자가 없고 무력도 그와 같았다 한다. 그런 중에 책 읽는 욕심도 대단해서 주변을 향한 욕으로 담임선생을 기겁하게 하고, 거꾸로 『빨강머리 앤』 감상 글로 담임선생을 울리기도 했다. 『빨강머리 앤』의 앤도 처음 입양된 가정에서 행복한 기억이 별로 없지만 다른 집으로 입양 가고 스스로 성장해가면서 주위까지 환하게 해준 친구로 기억한다. 상상력이 풍부하고 말이 많은 앤이나 욕을 잘하고 기구를 잘 다루는 아이는 서로 다르면서도 꽤 닮았을 거란 생각도 얼핏 든다.
저자는 가정교사 자리를 잃고 신촌 창촌동 허름한 가옥에 세 들어 살던 시절, 내면의 분노와 신체의 영양결핍과 병으로 사흘을 앓고 누웠을 때를 잊지 못한다고 했다. 유흥가에 일하는 옆방 여자가 내준 김치찌개 든 냄비와 밥 한 공기에 대한 기억이다. 그때의 맛, 냄새에 상대를 헤아려주는 정이 저자의 몸과 영혼에 깊이 스민 것이다.
“나는 내가 살아온 것이 나 혼자의 힘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술집 여자의 밥 한 공기 같은 도움을 알게 모르게 받고 살았다. 내가 사람의 직업이나 계층을 보지 않고 인간성을 보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고 저자는 적었다.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생각은 이전부터 저자 안에 형성되어 왔을 테지만 그녀에게 직접 돌려줄 수 없는 그때의 고마움을 극진하게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저자가 잊지 못할 또 한 명의 은인은 6학년 담임선생이다. 똑똑한 아이를 상급학교로 진학시키지 않는 어머니를 대신해 자신을 입양이라도 하겠다는 담임선생은 저자에게 가장 각별한 선물을 준 사람이다. 어머니와 담임의 대화를 들으며, “그때 나는 슬펐지만 세상에 대한 안도감을 느꼈다. 누군가 나를 알아준다는 것, 나를 선택하는 이가 있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했다”고 고백한다. 이후 저자는 어머니 뜻대로 돈을 버는 데도 열심이었지만 선생의 뜻대로 책을 읽는 사람으로 자라서 주위에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다.
한번은 어머니가 좋아하는 김치찜을 직접 요리해서 차에 싣고 가되 들통의 크기로 모녀는 서로 흡족해 한다. 저자를 지지해준 어머니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통 큰 행보의 주인공답게 갈등 속에서도 거리감을 두지 않는다. 오히려 슬픈 사연 속에서도 중간 중간 웃게 되는 경험을 선사해주는 건 저자의 글에서 풍기는, 인간미 넘치는 친화력과 그걸 풀어내는 문장력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저자는 김치찜을 할 때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를 읽고, 김치찜을 차로 이동하는 중에는 말러의 교향곡을 듣는다. 화가 고야, 프리다 칼로, 케터 콜비츠를 좋아한다. 이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자기 안의 아우성과 사회의 소외된 목소리를 대신 표출했던 화가들이기도 하다. 저자도 언제든 소수자 편에 서서 그들을 응원하고 균형을 맞추고 싶어 한다. 그런 저자를 응원하는 독자의 열기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