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육화산 / 이종암

톰소여와허크 2024. 7. 11. 01:25

육화산 / 이종암

 

날이 새거나 어둡거나 상관도 없이

고향집 대청마루에서 날마다

고개 들고 바라보던 육화산(六花山)

불혹도 한참 지나서야 처음 올랐네

 

산굽이 돌아서고 올라설 때마다

저 멀리 발아래 내려다뵈는

동창천 강줄기는 푸르게 웃으며

내게로 달려오고

강 가까이 옹기종기 사람들 모여 사는

용전 길명 명대 북지 삿갈 호방

마을들 여기저기 꽃처럼 피어나네

 

산봉우리 여섯 꽃잎처럼 둘러싸여

얻은 이름 육화산인가?

산에 함께 올라간 어릴 적 친구들

종의 영자 용식 전열 명자 태봉이

동무들은 모두가 오래 정든 산 같고

꽃잎, 꽃잎, 꽃잎들만 같은데

 

확확대던 숨결 유야무야 싱거워지면

우리도 저 육화산 속으로 들어가서, 끝내

산의 부분으로 육화되는 것 아니겠는가

그 내통 위에 꽃은 또 피고 지고

 

-『꽃과 별과 총, 시와반시, 2024.

 

감상 이종암 시인의 고향은 청도다. 시인의 고향 자랑은 은근하다. “전국의 군 이름 가운데 도()라는 글자를 안고 있는 곳은 눈 씻고 찾아봐도 청도뿐”(청도)이라고 했다. 부모의 사랑 속에 몸과 정신을 길러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삶의 도리까지 깨쳐준 고장을 시인은 수시로 찾는다.

운문의 물이 동창천 따라 금천 지나 매전으로 내려오다가 청도천과 합수되어 밀양강으로 흘러가는데 동창천 중간 지점인 매전면 장연리가 시인이 태어난 곳이다. 동창천 따라 이어지는 국도 변에서 곳곳의 다리를 지나 산 아래 마을로 들게끔 되어있는데 바깥에서 보는 풍경도 그윽하지만 안쪽으로 들어가도 나름의 운치를 간직한 곳이 많다. 특히, 감나무 밭에 두 기의 석탑이 있는 장연사지가 인상적이다.

장연사지 뒤편 산은 시인이 늘 보면서도 마흔이 넘어서야 올랐다는 육화산이다. 군 이름에 도() 자도 드물지만 육화산(六花山)이란 이름도 그렇다. 시인은 여섯 개의 꽃을 마을로 보기도 하고, 벗으로 보기도 하지만 흥을 내서 6에 맞추어 본 것이다. 고향을 매개로 떠올려진 것들이나 고향의 인연들을 꽃잎 꽃잎 꽃잎에 견준 것은 표제시 저마다, !처럼 주변의 것들을 하나하나 다 귀하게 여기는 마음과 다르지 않다.

육화산의 또 다른 의미로 산의 부분으로 육화되는 것을 언급하면서 시인은 인식의 확장을 꾀한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의 일부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이다. 사실, 사전적 의미의 육화(肉化)’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일컫지만 여기서는 영()과 육()이 함께 육화되어 없어진다는 의미에 가까워 보인다. ‘내통이란 단어가 주는 어감도 따로 떼놓고 보면 부정적 상황에 쓰일 때가 많지만 이렇듯 시에 들어가서는 건강하고 발랄하고 재미난 쓰임으로 살아있다. 작가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것을 소화하고 육화했던 시간과 정성이 결실해서 작가와 독자의 지극한 내통이 이루어지는 거라고, 대개의 경우는 그럴 거라고 여긴다.

 

청도 장연사지는 여러 번 다녔어도 육화산에 오를 생각은 못했는데, 동창천이 보이는 육화산의 조망이 궁금해진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