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화 / 김윤환
* 배경 그림은 송성진 화가 작
벽화 / 김윤환
대문을 열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창고로 쓰던 반지하방을 월세 5만 원에
몇 년을 옥살이처럼 산 적 있었다
일터에서 돌아와 문을 열면
어둠은 기다렸다는 듯 내 품에 안겼고
나는 그것이 무서워
창이 있었으면 좋겠다 싶어
가장 어두운 쪽에 창을 그리고
거기에 해를 그려 넣었다
쉬 잠들지 않는 밤이면
어스름 꿈결에 어느 소녀가 창틀에 앉아
햇살 같은 미소를 보내곤 했는데
화들짝 놀라 눈을 뜨면
촛농이 흘러내리듯 검은 창들이 온 방에 흘러내렸지
들어오고 싶지 않은 방에도 달력은 있었고
아무것도 적히지 않는 빈칸마다
따라갈 수 없는 시인의 시를 채우곤 했는데
시인과 흘러내린 창문과 어둠이
늡늡한 노래가 되어 아침이면 내 등을 적시곤 했다
지금은 지상 위에 집 한 칸을 갖고 살지만
아직도 그림자의 끝은
반지하 방 검은 창가에 걸쳐 있고
불과 열한 계단 아래의 방이었지만
오르는 일은 내려가는 일보다 어두웠지
장마가 오면 마치 깊은 저수지로 들어가듯
두려움과 안온함이 나를 감싸고 있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없었다면
난 아직도 바닥에 누운 검은 창틀과 하나가 되어
그 열한 계단 밖의 세상을
먼 하늘처럼 그리워만 하고 살았으리라
오늘도 왼쪽으로 돌아가면
삐걱 반지하의 문이 열리고
어둠은 여지없이 나를 감싸고
손 한 번 잡은 적 없는 소녀는
내가 그려놓은 창틀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푸른곰팡이는 꽃이 되어
한 폭의 벽화로 남아 있고,
햇살은 언제나 낯설다는 듯
그늘에만 꼭꼭 숨어 있었다
-『내가 누군가를 지우는 동안』, 모악, 2021.
감상 - 이사를 자주 하던 사람들은 그 경험에서 다음 집을 선택할 때 최소한의 요구란 게 생긴다. 앞집에 가려 해를 보지 못했던 사람들은 남향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우선 생각할 것이고, 수돗물 줄기가 약해서 샤워나 설거지에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은 수압을 우선 체크할 것이다. 또 누구는 교통의 편의를 먼저 생각하고, 또 누군가는 학군이 어떤가를 따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최소한의 요구는 최소한의 여유를 전제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시인의 젊은 날로 보이는 시의 화자가 창고 용도의 반지하 방에 세를 얻어 갈 때는 남향도 교통도 학군도 우선 고려 사항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당장의 비용이 다른 선택지를 애써 외면하게끔 강제했을 것이고 심지어 창문이라도 하나 있었으면 하는 바람마저도 접어야 했을 것이다. 단칸 창고의 삶이라 하더라도 그곳의 주인이 누구냐에 따라서 꿈과 낭만은 칸수 없이 무한 확장하기도 하는 것일 텐데 화자도 그런 사람이다. 화자의 꿈 하나는 “따라갈 수 없는 시인의 시”를 따라가는 거다. 그중엔 땔감 댈 돈이 없어서 잉크병 얼어가는 곳에서 손에 입김을 모아 시를 썼던 가난한 시인의 시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가난과 외로움에서 긷는 별 같은 시는 화자 자신에게도 적잖은 위로가 되었을 줄 안다.
화자가 보여주는 낭만도 이미 시적(詩的)이긴 하다. 검은색 매직(‘매직펜’이란 말은 없었지만 왠지 매직일 것 같다. 매직(magic)은 마술이기도 하니까.)으로 ‘없는 창’을 그리고 그 안에 해도 그려 넣는다. 꿈결에 매직 창틀에 앉은 소녀의 모습은 낭만의 정점이면서도 동시에 귀꿈스러운 면도 있다. 그리움이 만든 환상일 수도 있지만 귀신처럼 앉았다가 푸른곰팡이로 확인되는 현실 환기의 면도 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제 반지하를 나와서 지상에 집을 마련했다. 반지하의 시절을 “늡늡한 노래”로 적었기에 늪의 이미지가 먼저 떠올라 축축하고 꿉꿉한 상태를 생각했는데 실제 ‘늡늡하다’의 사전적 의미는‘성격이 너그럽고 활달하다’는 긍정의 의미를 갖고 있다. 얼핏 어둠과 부정의 의미에 더 가까울 거란 생각을 보기 좋게 깬 것이다. 물질적 여유와는 별개인 꿈과 낭만뿐만 아니라 가난한 이웃의 처지를 이해하며 햇살을 더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마음이라면, 세상살이의 본모습과 그 이면까지 더 깊게 헤아리는 마음이라면 꿉꿉해도 늡늡한 것이 되는 이치를 배우게 된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