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평안도 이야기

톰소여와허크 2024. 8. 24. 22:23

 

김남일, 평안도 이야기, 학고재, 2023.

 

- 서울 문학기행이든 남도 문학기행이든 섬 기행이든 지역과 관련된 문학 이야기는 많은 책 중에 골라서 봐야 할 형편이지만 오가는 길이 막힌 북한 쪽의 문학 기행은 흔치 않다. 그런 중에 근대 문학 중심의 평안도 이야기를 반기며 읽었다.

저자의 꿈은 함경선 기차를 타고 북상하면 띄엄띄엄 정거장마다 나와 이제나저제나 하고 어리숭한 후배 작가를 기다리고 있을 한설야, 이북명, 안수길, 김기림, 최서해, 김광섭, 현경준, 최정희, 이용악 같은 선배 작가들을 만나고, 또 문산에서 끊어진 경의선 철도를 이어나가면 마침내 평양은 물론이고 성천, 개천, 정주, 삭주, 구성, 희천, 강계, 초산, 벽동, 의주 따위 이름조차 낯설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고장들을 두루 만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저자의 뒤를 따라 평양으로 가본다.

이광수가 본 근대도시로 변해가는 평양은 무정을 통해 묘사되고, 전영택이 본 3.1운동 이후의 평양은 생명의 봄에서 그려볼 수 있다. 평양의 대동강은 김동인의 눈을 겨우 뜰 때의 기생 금패의 뱃놀이 장면으로 짐작해 볼 수 있는데 인용된 소설 한 장면은 이렇다.

강 좌우편에 단 불, 물에 뜬 불, 매화포의 불, 그것들이 비친 물속의 불, 도로 하늘로 반사한 대기의 빛, 거기에 또 여기저기서 나는 기생의 노래, 한국 아악.

이리하여 대동강, 모란봉, 부벽루, 청류벽, 능라도, 반월도, 모래섬 그 일대는 불로 변하고 사람으로 장식되고 음악으로 싸였다고 김동인은 쓰고 있다. 한설야의 에 묘사된 평양도 아름답다는데 칠성문(평양성의 북문) 밖은 상황이 또 다른 모양이다. 김동인의 감자, 김사량의 기자림, 김사량이 일어로 쓴 토성랑등을 통해 칠성문 인근의 빈민굴과 그 변화하는 모습을 조금이나마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1931년 평양에서 있었던 굵직한 사건으로 을밀대 체공녀 강주룡 이야기와 함께 배화 폭동 사건을 들기도 한다. 배화 폭동은 만주의 조선인 농민 여럿이 중국 관헌에 의해 맞아죽었다는 조선일보의 오보에다 실업자가 많은 상태에서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던 관계 등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조선인이 중국인 상점을 부수고 중국인에 테러를 가한 이 사건으로 인해 평양에서만 중국인 140명 가까이 죽고 또 그만큼 중상자를 남겼다. 끔찍한 사건이 빠르게 잊혀 가는 중에 김동인이 잡지에 남긴 유서(柳絮) 광풍에 춤추는 대동강의 악몽에 당시 상황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저자는 놓치지 않고 소개하고 있다.

평양 외에도 압록강 일대, 강계, 정주, 성천 등의 지역과 문학 이야기도 있다. 성천은 이상의 수필 산촌여정권태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라 하면서도 성천이 고향인 김남천을 우선 꼽는 분위기다. 성천은 밤()과 잎담배가 유명하단다. 저자는 도산 안창호와 고당 조만식이 성천초를 어떻게 피웠는지 그 버릇을 알려주는 성의도 보여준다. 김남천은 여러 단편과 장편에서 고향 성천 이야기를 한다. 비류강의 강선루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저자가 인용한 단편 오디에서도 일부 확인이 된다. 저자는 김남천의 소설을 읽으며 성천의 눈 내리던 어느 밤의 풍경을 그리며, “나는 그런 드물고 귀한 풍경들을 하나하나 주워내서는 퍼즐처럼 무엇인가 커다란 그림을 짜 맞추는 내 작업에 꽤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나는 또 다른 이유로 김남천의 단편집 한 권을 주문하지만 언제 읽게 될지 아득하기만 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