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산문> 물 긷는 소리

톰소여와허크 2024. 11. 10. 12:16

장석남, 물 긷는 소리, 해토, 2008.

 

- 페북에 김종삼 시인에 대한 글을 끼적이다가 장석남 시인이 자신의 시 송학동3 김종삼 부음에서 김종삼의 부고 소식을 접하고 헌혈을 한 얘기를 적었더니, 울산의 양 쌤이 시인의 수묵 정원 3- 물 긷는 사람도 김종삼의 영향이 있을 수 있겠다고 답글을 준다. 마침 장석남 시인의 산문집에 물 긷는 소리가 있음을 우연찮게 접하고 읽는다.

산문집 내용만 따르면 물 긷는 소리는 어린 시절의 추억과 관련이 있다. 섬마을 덕적도 집과 계단으로 마을이 된 인천 송학동의 동향집을 떠올리고 그 시절 새벽이면, “내가 잠자던 방 뒤꼍에 있던 우물에서 숫물 긷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나는 그 성스러운 소리 또한 잊을 수 없다고 했고 서문에서 부연하기를 그런 물 긷는 소리를 닮고 싶다고 했다. 물 긷는 소리의 장면은 어머니의 존재 나아가서 부지런한 이웃의 존재와 가장 가까이 닿아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이후 장석남은 신문 연재 글에서, 김종삼의 물통을 소개한다. 물통은 저승길에서 영롱한 햇빛에게 김종삼 본인이 이쪽에서의 삶을 겸손하게 전하는 말로 이해한다.

그동안 무엇을 하였느냐는

물음에 대해

다름 아닌 인간(人間)을 찾아다니며

물 몇 통() 길어다 준 일밖에 없다고” (김종삼, 물통)

산문집에선 김종삼의 나의 본적을 소개하며 자신을 짚신 같고 맨발 같은 존재로 비유한 시인의 뜻을 가상하게 평가한다. 그러니, 수묵 정원 3- 물 긷는 사람엔 유년의 기억이 일차적으로 작용하고 있고 여기에 김종삼의 영향이 무의식중에나마 작용하고 있다고 더 얹어 말해도 좋겠다.

실제, 장석남 시인이 밝힌 문학적 영향 관계는 서울예전에서 은사로 만난 오규원, 최하림과 이후 최원식과의 만남이 큰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목포가 고향인 최하림 선생을 찾았다가 마삭줄을 얻어 왔지만 마삭줄은 추위를 이기지 못했고, 영동에 내려간 선생에게 유자나무를 선물 받았지만 입구에 두고 왔다고 하니 이후에 챙겨왔는지 궁금하다. 오규원 선생은 시를 호되게 나무라서 시인을 방황케 한 사람인데 또 그 제자를 김종삼과 박용래 그 사이 어디쯤이라고 해서 사기를 올려주기도 한다. 댁에 찾아가 술김에 화분 식물을 부러뜨렸는데 선생이 즐거운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을 시인은 오래 기억한다.

경희대 주관 고교생문예현상모집에 나란히 수상한 이홍섭과의 우정도 잔잔하고 깊고 아름답다는 생각이다. 인천과 강릉 양 극점을 고향으로 갖고 지금껏 서로 내왕한 인연에 대해 이렇게 적어두고 있다.

우연찮은 기회에 십 대의 마지막 해에 그와 만난 것은 나로서는 참 행운이고 다행이다. 말 배우고 반생이다. 그가 없다면 내 생은 지금 얼마나 적요할 것인가. 아니 적요하다고 하는 것은 사치스러울 정도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그에게나 나에게나 좀 쑥스러운 일이다. 그와 내가 같은 해에 정반대편이 같은 위도 상에 태어난 것이 내겐 좀 흥밋거리다.”라고.

이홍섭을 낡은 단청 처마의 집을 포함한 수묵 정원이라고도 했는데 장석남 시인도 그런 집을 가꾸고 있음을 책에서 보여준다. 성북동 집에 한아정(寒鴉亭)이란 이름도 달았다. 아는 스님에게 받은 글을, 춥고 배고픈 까마귀로 뜻을 새기고 좋아한다. 계단까지 옮겨가면서 대나무 네 그루를 심고 시인은 인류 평화를 위해서 대를 심었다고 자축한다.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한 평 반쯤의 연못도 판다. 이백처럼 배를 띄울 순 없지만 돌에 물을 끼얹고 그 변화를 살피는 것도 좋아한다. 시인은 거기서 돌을 파고, 음악을 듣고, 글을 쓴다.

적적해지는 것은 내 오랜 취미다. 그 취미가 나를 이끌어 간다. 적적함이 직업이라도 좋겠다. 적적하지 않고서야 이 세상을 어디에 놓고 바라볼 것인가. 적적함은 맑은 거울이요 명쾌한 저울이요 사랑의 반석이다. 적적한 곳에 이르지 않는 이를 나는 사랑할 수 없고 적적함을 모르는 이를 나는 친하다고 할 수 없으리라. 나는 끊임없이 적적한 장소와 시간을 찾아 헤매는 신세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을 견디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적적은 그래서 지극히 상류층의 취미임이 틀림없다. 나는 자꾸 상류층이 되고 싶은 모양이다.”

적적함에 대한 시인의 말이다. 나도 구름 떠가는 것만 종일 보고 싶다고 말을 내는 부류니 시인의 뜻이 내 뜻 같기도 하다. 다만, 상류층 운운하는 끝의 두 문장은 사족 같기도 하다. 말의 재미와 유머를 더한 문장일 테지만 적적함을 추구하는 것에 상류와 하류가 따로 있을 것 같지 않아서다. 웃자고 한 이야기에 정색하는 꼴이라서 뒤가 더 켕긴다. 훗날 다시 읽으면 편하게 웃게 될 것이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