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소년이 온다

톰소여와허크 2024. 12. 15. 10:16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 1980517일 신군부 주도하의 비상계엄령이 전국으로 확대되면서 국회가 봉쇄되고 휴교령이 내려진다. 이튿날 518일부터 비상계엄 해제하라는 시민의 목소리가 전국적으로 나오고 광주가 그 중심이 된다.

그날부터 열흘 간 광주 시민은 저항하고 계엄군은 저항하는 시민을 폭행하고 사살하면서 진압을 마무리했다. 소년이 온다는 그 열흘 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죽은 자와 산 자의 증언과 기록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니 허구와 상상력이 주를 이루는 소설과는 분명 구별되고, 한강 특유의 강렬한 시적 산문으로 인해 이전의 다큐멘터리 소설과도 구별되는 면이 있다.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에서 5.18 희생자를 다룬 자료를 읽는 게 너무 힘들어서 소설 쓰는 걸 거의 포기할 무렵, 5.18 도청 마지막 날 희생자인 야학 교사 박용준의 일기 한 구절을 통해 다시 글을 쓸 수 있었다고 했다. “하느님, 왜 저에게는 양심이 있어 이렇게 저를 찌르고 아프게 하는 것입니까? 저는 살고 싶습니다는 문장이다. 이 문장을 접하고서야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는,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다는 나름의 생각이 섰고 소설을 완성할 수 있었단다.

소년이 온다는 그 양심 때문에 계엄군의 최후통첩에도 도청을 떠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가를 아프게 보여준다. 그중 한 명은 고1 학생인 동호다. 동호는 친구 정대가 계엄군의 총을 맞고 쓰러지는 것을 보고 정대를 돕지 못한 것이 양심의 가책이 되어 다른 희생자를 돌보며 끝내 도청에 남는다. 그때 동호를 눈물로도 억지로도 데리고 나오지 못한 어머니와 가족은 살인 명령자를 저주하며 평생의 한을 가슴에 묻고 산다.

정대는 살아서 증언하지 못한 말들을 죽은 혼이 되어 이야기한다. 서술자가 된 정대의 혼은 자신이 어떤 아이였는지 그런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어디로 끌려가서 화장되었는지를 말한다. 정대의 혼은 옆구리를 관통한 총알을 생각하며,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라는 독백을 내뱉는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강 작가는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에 뜻밖에 따뜻한이란 수식어를 붙인다. 가장 인간적이지 않은 사람들조차도 인간의 체온을 가진 사람이었다는 자체모순이요 언어도단의 상황을 생생하게 느껴 보라는 것일 수도 있겠다. 명령을 내린 사람도, 부당한 명령을 따른 사람도 다른 사람과 구별되지 않는 눈동자를 하고 권력 주변에 또 군중 속에 섞여 있기도 할 것이다.

사실이 이러하다면 정의와 그 반대편을, 양심을 지키려는 자와 그 양심을 짓밟는 자를 어떤 표식으로 구별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만한데 그 대답의 힌트를 앞서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을 잇는 수상 연설문에서 찾게 된다. 한강은 연설문 서두에서, 여덟 살 때 비를 피하던 경험을 얘기한다. 비가 오는 걸 지켜보던 이쪽과 저쪽의 사람들이 처한 처지나 그들의 감정이 자신과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는 것이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깨닫고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다고 말한다.

이 경험은 남의 일을 남의 일로 치부하지 않는 마음, 2인칭 3인칭 의 일로 나 몰라라 하지 않는 마음자세와 관련될 것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감지 않는 마음은 필연적으로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들의 반대편폭력의 반대편에 서 있게 된다는 것이 한강의 생각이다. 소년이 온다그런 마음이 결실한 것이고, 제주 4.3항쟁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도 그 연장선상에 놓인 소설일 걸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19805.18 민주화운동 이후 44년이 지난 지금이다. 공교롭게도, 202412.3 계엄이 선포되고 해제되는 딱 그 시점에 한강 작가는 노벨상 수상 소감을 발표하고 얼마 후 수상 연설문도 읽는다.

소년이 온다를 쓰기 위해 현장을 답사하던 한강은 5.18 희생자인 동호, 정대, 정희, 선주, 은숙, 진수의 육성과 기척을 알아듣고 소설화했다. 이들에게 성을 주지 않고 이름만 부르는 건 무심한 양심을 깨워 더 가까이, 더 가깝게, 더 친밀하게 곁을 내어 달라는 주문은 아니었을까.

한강 작가는 소년이 온다를 통해 고통의 시대를 지나간 영혼들을 1인칭으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소망인 양, 자신의 뜻인 양 한 문장을 쓴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라고.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