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바다와 나비와 사랑 / 박덕규

톰소여와허크 2024. 12. 18. 16:36

 

바다와 나비와 사랑 / 박덕규

 

 

나도 한때 누군가를

바다를 헤엄쳐 갈 만큼 사랑한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 사람 사는 데가 섬인지

바다 건너 어떤 대륙인지도 모르면서

실은 헤엄도 못 치면서

헤엄쳐 가는 것만이 사랑인 줄 알았던 거다.

 

바다를 건너다 그냥 지쳐버릴

나비가 될 수 있다는 것도 몰랐던 거다.

바다가 왜 파란 줄도 몰랐던 거다.

 

아무리 거칠게 날갯짓을 해도

가 닿지 않을 사랑이 있다는 것을

젖은 날개가 다 찢긴 뒤에야 깨달았던 거다.

 

- 『날 두고 가라, 곰곰나루, 2019.

 

감상 -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1939)가 생각나는 시다. 박덕규 시인은 바다와 나비사랑을 더하면서 시 내용이 사랑으로 확 기울게끔 한다. 김기림의 것은 표면적으론 사랑과 무관한 이야기처럼 보이긴 한다. 시 전문을 다시 읽어본다.

 

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흰 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무우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

공주처럼 지쳐서 돌아온다.

 

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 김기림, 바다와 나비전문

 

한마디로, 바다 무서운 줄 모르는 나비가 바다에 나가 제대로 쓴맛을 보고 돌아온다는 얘기다. 1930년대 모더니즘의 기수로 언급되는 김기림의 위상과 맞물려, 새로운 시대(근대)를 맞이해서 의욕에 찬 시도와 도전에 나서지만 경험 부족으로 좌절하는 모습을 바다와 나비가 담아냈다는 평이 많다.

박덕규의 바다와 나비와 사랑에서 나비가 바다에 나갔다가 날개가 젖고 심지어 찢기는 낭패를 겪는 것은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가 보여준 국면과 다르지 않다. 실제 제목과 내용을 고려하면, 김기림의 시가 모티브가 되어 박덕규 시인이 이를 창조적으로 변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 변용이 시원찮을 때는 김기림에 대한 예우도 못 되고, 독립된 작품으로 주목도도 떨어질 우려가 있지만 바다와 나비와 사랑바다와 나비가 가진 함축성을 구체적 이야기로 바꾸면서 또 다른 개성을 획득한 매력적인 작품이 되었다.

나비가 바다에 대해 충분히 알거나 대비하지 못하고 상당한 충격과 손상을 입는다는 공통점이 있긴 하지만 두 작품은 차이점도 뚜렷하다. 그중 하나는 바다의 역할이다. 바다와 나비에서 바다는 그 자체로 모험의 대상인 세상이다. 반면 바다와 나비와 사랑에서 바다사랑을 가로막는 장벽일 뿐이다.

바다 건너 그 사람이 사랑의 대상이겠지만 시인은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그 사람에게 가 닿으려는 헤엄질에 더 주목하고 있다. “바다를 헤엄쳐 갈 만큼 사랑하고, “헤엄쳐 가는 것만이 사랑인 줄믿는 날이 있었단다. 어떤 장애도 넘을 것 같은 사랑의 열렬함에도 불구하고 실은 헤엄도 못 치면서란 단서를 둔 것은 시인의 유머이자 현실인식이다.

바다와 나비와 사랑이 표상하는 사랑은, 죽자는 각오로 헤엄을 쳐도 모두 무용한 일이 되고 마는 쓸쓸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 사람 근처에 가 닿기는커녕 바다에 빠져죽기 딱 좋은 사랑이겠다.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든 무엇이든 간에 죽을힘을 다해 거칠게 날갯짓을 해보는 데 적잖은 위로와 감동도 생긴다.

시인은 결구에 젖은 날개가 다 찢긴 뒤에야 깨달았던 거다라고 했지만 깨달음의 내용이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 아니라 젖어서 찢긴 날개가 잔상으로 남는다. 젖어서 찢긴 날개 앞에 멀쩡한 날개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는 것이 또한 인생의 묘미일 것이다.(이동훈)